서정민 브랜디 대표는 “동대문시장은 신규 사업자가 거래처를 뚫기 힘들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매상과 소매상, 온라인 쇼핑몰 운영자들을 연결해주는 오프라인 공간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동대문시장에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50여 년간 큰 변화가 없던 동대문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이들이다. 원단 구매부터 옷 제조 생산, 도·소매상 중개 및 물류 배송에 이르는 의류 생산 전 단계의 판도를 바꿔놓고 있다. 스타트업의 등장은 동대문은 물론 전체 패션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디자이너·봉제사의 공존 ‘창신아지트’
지난해 12월 서울 창신동 봉제골목에는 동대문에서만 볼 수 있는 작업실이 생겼다. 40~50대 봉제사들과 20~30대 패션 디자이너들이 함께 일하는 ‘창신아지트’ 3호점. 1층엔 재봉틀을 놓은 공용 공간과 디자이너들을 위한 개별 작업 공간을, 2층엔 봉제사들이 일하는 소규모 공장 세 칸을 마련해놨다. 3층에는 차 전문점과 수제맥주 펍이 자리잡았다.
창신아지트는 부동산 개발 스타트업 어반하이브리드가 운영하는 공유 작업실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도시 계획을 공부하던 이상욱 대표가 2015년 아이디어를 냈다. 이 대표는 반경 10㎞ 이내에서 원단 생산부터 옷 도·소매까지 가능한 동대문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는 동대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직업인을 연결해주기로 했다. 디자이너들은 한 달에 20만~30만원가량의 임차료를 내면 칸막이로 구분된 공간을 빌릴 수 있다. 현재 이곳에는 갓 대학을 졸업한 새내기 디자이너부터 영국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한 뒤 동대문 패션 인프라를 찾아온 유학파, 기업체에서 일하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려는 디자이너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50여 명의 디자이너가 모여 작업하고 있다.
이 대표는 “동대문 일대는 아이디어가 넘치는 청년 디자이너들과 오랜 경력을 지닌 기술자들이 공존하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원단 검색부터 트렌드 분석까지
동대문 패션 생태계에서 제조 단계별로 활력을 주는 스타트업도 있다.
키위는 동대문에서 판매하는 의류 원단·부자재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앱(응용프로그램)으로 2017년 출시됐다. 이곳에는 7000여 개의 동대문 원단·부자재 업체가 등록돼 있다. 120만 개가 넘는 상품을 검색할 수 있다. 인기있는 원단을 추천하고, 원단 판매상과 유통업체를 연결해주기도 한다. 키위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디알코퍼레이션의 정종환 대표는 “자라, H&M 같은 해외 유명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도 동대문에서 옷 재료를 사갈 정도로 동대문시장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원단·부자재 시장”이라며 “이곳 원단·부자재 업체들을 한군데 모으는 것만으로도 시장성이 생길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동대문에 쇼룸을 연 브랜디는 물류 대행 서비스 ‘헬피’도 운영하고 있다. 헬피는 동대문시장에서 의류를 사는 것부터 상품 검수, 포장, 물류 보관을 비롯해 배송 및 반품 처리 등을 대행해준다.
동대문 의류 도매상과 전국 소매업체·쇼핑몰을 연결해주는 곳들도 성장하고 있다. 링크샵스와 딜리셔스가 대표적이다. 동대문시장을 돌아다니며 옷을 대신 구매해 지방 곳곳으로 보내준다. 동대문 신상 의류가 매일 1만~2만 개씩 이들 업체에 등록된다.
빠르게 바뀌는 유행을 읽어내주는 스타트업도 동대문에서 기회를 찾았다. 2016년 설립된 와이즈패션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동대문 패션 트렌드를 분석한다. 소매상이 사진 한 장만 올리면 비슷한 스타일의 제품을 파는 도매상과 이어준다. 업계 관계자는 “연간 15조원에 달하는 동대문 패션시장은 내수가 약 70%를 차지한다”며 “내수용 온라인 판매 시장이 커지면서 동대문에서 기회를 찾는 청년 창업가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안효주/오현우 기자 j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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