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을 추진하는 곳들이 ‘지분 쪼개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분 쪼개기란 단독주택을 허물고 다세대주택을 짓는 등의 방법으로 분양 대상자를 늘리는 수법이다. 이들에게 분양자격을 줄 경우 앞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동의율을 확보하기 쉽다. 그러나 그만큼 조합원 숫자가 늘어나 사업성이 떨어지다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
◆사업 속도 vs 사업성
27일 서울 동대문구청과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전농·답십리뉴타운의 전농9예정구역(전농동 103 일대)이 정비구역 지정 절차를 밟고 있다. 일대는 2004년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됐지만 10년 이상 재개발이 답보 상태에 머물다 2016년 직권해제 직전까지 몰렸다. 투표에서 기사회생한 뒤 주민들이 나서 정비구역으로 지정해달라며 지난해 동대문구청에 구역지정안을 냈다.
문제는 재개발이 지지부진하는 동안 신축 빌라가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현지 중개업소들은 구역으로 묶인 약 4만5000㎡에 270가구가량의 빌라가 지어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업이 멈춘 사이 행위제한이 풀린 까닭이다. 전농동 A공인 관계자는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방 두 칸짜리 빌라의 매매가격이 4억원대로 올라섰다”며 “구역지정이 이뤄지면 프리미엄이 더 붙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장 구역지정이 고시될 경우 신축 빌라 소유주들은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없다. 전농9구역이 예정구역으로 지정될 당시 서울시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는 2008년 7월30일까지 건축허가를 신청해 지은 다세대주택에 대해서만 각 소유자의 분양자격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지분 쪼개기가 이뤄지기 전 원소유주 1명에게만 입주권이 주어지고 나머지는 현금청산해야 한다는 의미다. 속칭 ‘물딱지’가 되는 셈이다. B공인 관계자는 “재개발을 미끼로 투자자들에게 빌라를 팔아 수수료를 챙기는 업자들도 있다”면서 “새 아파트를 받지 못하고 청산하게 될 경우 큰 재산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축 빌라 소유주들에게 입주권을 줄 수도 있다. 추진위원회(향후 조합)가 소형 아파트를 많이 짓는 방식으로 이들을 구제하는 방안이다. 서울시 조례는 종전주택이 재개발될 아파트의 최소 전용면적보다 크거나 종전주택의 감정평가액이 아파트의 최소 분양가보다 높은 경우 입주권을 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추진위가 사업계획에 전용 40㎡ 아파트 가구수를 늘린다면 전용 50㎡ 빌라를 소유한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셈이다.
이 경우 구역 내 토지등소유자 대부분을 조합원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조합설립에 필요한 인별 동의율 75%와 면적 기준 동의율 50%를 맞추기 수월해진다. 그러나 조합원수가 늘어나는 만큼 일반분양분이 감소해 사업성이 낮아진다. C공인 관계자는 “입주권을 주지 않는다면 빌라 소유주들이 조합설립에 동의할 이유가 없다”며 “어느 정도까지 구제할지 추진위 입장에선 골치가 아플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 대부분 지역의 재개발 물건을 주로 거래하는 D공인 관계자는 “전농9구역에서 거래를 할 땐 향후 입주권이 나오지 않더라도 중개업소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특약을 건다”며 “재개발 물건 계약서에 이 같은 단서를 다는 건 굉장히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노후도 요건까지 떨어뜨려
재개발을 다시 추진하는 지역들도 늘어나는 신축 빌라가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옛 염리5구역(염리동 105 일대)은 2016년 정비구역에서 해제됐지만 최근 주변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면서 재개발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대형 빌라가 60가구 이상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구역에서 완전 해제됐던 곳이기 때문에 입주권 자격에 대한 걸림돌은 없지만 노후도가 문제다. 재개발구역 지정은 주변 기반시설 유무와 주택의 노후도를 따지기 때문이다. 마포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노고산동 일대 주민들이 지난해 10월 정비구역으로 지정해달라며 주민동의서를 제출했지만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반려됐다”며 “그동안 신축 빌라가 늘어나면서 노후도가 내려간 결과”라고 설명했다.
재건축에 규제가 집중된 사이 재개발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마포 일대 빌라는 건축허가가 떨어지자마자 분양이 끝난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들의 얘기다. 3억~4억원의 목돈으로 서울 요지의 새 아파트 분양자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비구역 지정 절차를 밟고 있는 아현동 699 일대(가칭 아현1구역)도 지난해 행위제한이 걸리기 전까지 신축 빌라가 100가구 이상 늘었다. 가뜩이나 많은 소유자가 더 늘어났다. 새 아파트 건립계획은 3300여 가구인데 이 구역의 토지등소유자와 지분공유자만 2832명이다. 재개발을 할 때 의무로 지어야 하는 임대물량을 감안하면 일반분양분은 100~200가구에 그칠 전망이다. 아현동 E공인 관계자는 “대지면적과 지형을 잘 들여다보면 3300가구조차 다 짓기 어려울 수 있다”며 “건립 가구수가 줄어들수록 사업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개발구역에 투자할 때 이 같은 점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고의로 재개발 붐을 일으킨 뒤 빌라를 지어 파는 게 컨설팅업체들의 전통적인 수법”이라면서 “지분 쪼개기가 많은 곳은 향후 사업 진행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지거나 노후도가 떨어져 아예 구역지정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