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가 1960년 출간한 《자유헌정론(The Constitution of Liberty)》은 19세기 고전적 자유주의의 이상을 20세기 시각에서 재천명한 저작이다.
하이에크는 존 스튜어트 밀의 계승자적 위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고유의 이상적 자유주의론을 확립했다. 이 책을 펴냈을 당시엔 전 세계에 사회주의와 복지국가의 이상이 휘몰아쳤다. 서구문명의 성공을 가능케 한 자유의 가치가 쇠퇴해가던 시기 하이에크는 “자유야말로 모든 도덕적 가치의 원천”임을 주창하며 그 전통의 복원을 모색했다.
하이에크가 이 책에서 주목한 자유는 타인의 강제가 없는 상태인 ‘개인적 자유’다. ‘정치적 자유’ ‘집단적 자유’와 구별되는 개념이다. 개인적 자유를 문화적 진화의 산물로 본 하이에크는 자유가 필요한 이유를 ‘무지(無知)’라는 인간 본성에서 찾았다. 인간이 전지전능하다면 지식을 습득하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필요가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문명의 발전 과정은 확실성이 아니라 우연과 개연성에 대처한, 무지라는 근원적 사실에 대한 적응의 결과라고 봤다. 자유가 발전과 진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해 문명의 진보를 가능케 했다는 설명이다.
자생적 질서가 시장경제 발전 이뤄
하이에크는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상호 작용함으로써 확립되는 ‘자생적 질서’가 존재한다고 봤다. 정부가 나서 사회를 계획할 수 있다는 사고가 일반적이던 시절, 하이에크는 개인 행위의 자발적 상호 조정이 시장을 통해 효율적으로 이뤄지는 시장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자유에 대한 유일한 침해는 타인의 강제라고 했다. 하이에크는 “강제는 스스로 생각하거나 평가할 수 없도록 하고, 타인의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만들기 때문에 해악”이라고 주장했다. 국가의 강제는 최소화돼야 하며 일반준칙으로 제한함으로써 개인이 예측 가능한 상태에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유에 대한 가장 커다란 위험은 자기들이 공공선이라고 간주하는 것에만 몰두하는 유능한 전문 행정가들에게서 나온다”며 “정부 권력의 개입은 그것이 피할 수 없고, 예측 불가능한 경우에 가장 파괴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자유가 어떤 제한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자유와 책임은 분리될 수 없다는 게 그의 견해다. 다만 책임이 효율적이기 위해서는 명백하고 제한적이어야 한다. 또한 자유는 법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하이에크는 국가의 역할이 ‘법의 지배’를 유지하는 데 있다고 봤다. 자유로운 사회를 이루려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자유가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형태의 법이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돼야 하고, 확실해야 하며, 그 적용이 동일한 사람이나 기구에 맡겨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민주주의가 꼭 자유 보장하지 않아"
하이에크는 현대 민주주의제도가 지닌 문제점도 비판했다. 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지켜주기는커녕 이를 유린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자유주의는 통치의 범위와 목적에 관한 원칙인 반면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라는 통치 방식이다. 자유주의는 전체주의, 민주주의는 전제주의와 맞서는 개념이다. 교조적 민주주의자는 다수결로 많은 쟁점이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자유주의자는 그렇게 결정될 사안의 범위에 한계가 있다고 믿는다. 하이에크는 “민주주의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최상의 방법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에서 권리는 다수가 규정하는 바대로다”라는 주장이 제기될 때 민주주의는 ‘선동정치’로 전락한다고 경고했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의 변형으로 등장한 복지국가에 대해서도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다. 농업인구의 특정 구성원을 보존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그들을 정부의 영속적 피후견자로, 또 인구의 나머지에 기식하는 연금생활자로 변화시키고 그들의 생활을 계속해서 정치적 결정에 의존하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서유럽 국가에서 이뤄진 땅값 규제 조치에 대해서는 개인 생활이 당국의 재량적 결정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경제적 자유가 위협받고 법치 훼손 및 복지 확대에 대한 논란이 커지는 이즈음, 자유에 대한 근원적인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책이다.
양준영 논설위원 tetrius@hankyung.com
‘다시 읽는 명저’ 연재를 마칩니다. 성원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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