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과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외국계 완성차 3사가 생사의 기로에 섰다. 이들 3사의 지난해 자동차 생산량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보다 더 쪼그라들었다. 오랜 판매 부진과 구조조정, ‘노동조합 리스크’ 등이 맞물린 결과다.
23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현대·기아자동차를 제외한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차 등 중견 3사는 지난해 70만7765대의 차량을 생산했다. 최악의 부진을 겪은 2018년(80만2634대)에 비해 11.8% 줄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75만6725대)보다도 생산량이 적다. 10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생산절벽’에 빠진 이유는 복합적이다. 2017년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이어 2018년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까지 맞물리며 3년 가까이 고전해온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조의 ‘습관성 파업’도 생산량 감소를 부채질했다는 지적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르노삼성의 닛산 로그 수탁생산은 올 3월 이후 끝난다. 연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던 물량이 사라지게 된다. 쌍용차는 선보일 신차조차 없다. 한국GM도 당분간 생산량을 끌어올리긴 어려운 처지다.
위기는 부품업계로 전이되고 있다. 한 부품사 대표는 “중견 3사의 부진이 장기화하면 적자에 허덕여온 부품업체들이 더 버티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강성노조 '묻지마 파업'에 본사도 지원 '뚝'…생사기로 선 중견 車3사
르노삼성자동차 SM5, 한국GM 스파크, 쌍용자동차 티볼리….
한때 한국 자동차 시장을 주름잡은 차량들이다. 몇 년 전만 해도 한국GM과 르노삼성, 쌍용차 등 외국계 완성차 3사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를 긴장시키는 경쟁사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들 3사의 존재감은 눈에 띄게 약해졌다. 3사의 차량은 2018년부터 ‘국내 10대 베스트셀링카’에 이름도 올리지 못하고 있다. 내수 판매량은 2016년 이후 3년 연속 내리막이다. 3사의 지난해 수출량은 45만6366대로 전년보다 15.4% 줄었다. 노조는 툭하면 파업에 나서고, 대주주인 해외 본사는 한국 물량을 줄여가고 있다.
몽니 부리는 노조
르노삼성 노조는 기본급을 올려달라며 지난해 말부터 파업과 협상을 번갈아 하고 있다. 2018년 10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극한 노사갈등 끝에 2018년도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마무리했지만, 노조는 6개월 만에 다시 파업에 나섰다. 회사 측은 2018년 말 현 노조 집행부가 들어선 이후 500시간 가까이 파업이 이뤄졌고, 4500억원 규모의 매출 손실을 봤다고 밝혔다.
회사는 기본급을 더 올리면 프랑스 파리 르노 본사로부터 수출 물량을 배정받을 수 없다고 호소하고 있지만, 노조는 요지부동이다. 회사 측이 르노삼성 부산공장의 평균임금이 전 세계 르노공장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해도 먹히지 않는다. 이 회사 노조는 오히려 현대·기아차와 비교해 자신들의 임금이 낮다고 주장한다. 업계 관계자는 “르노 본사가 수출 물량을 배정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투명한 르노삼성과 한국 1위, 세계 5위(판매량 기준)인 현대·기아차의 임금을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임금 인상을 요구 중인 한국GM 노조는 지난해 임단협을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다. 이 회사 노조는 지난해 9월 회사가 미국에서 수입해 판매하는 콜로라도와 트래버스를 사지 말자는 캠페인을 하려다 여론의 역풍을 맞기도 했다. 한국GM 노조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 편입(2002년)된 뒤 처음으로 지난해 전면파업을 강행했다.
한국 공장에 무관심한 해외 본사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침체되면서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차 등 3사의 해외 본사들은 갈수록 한국을 외면하고 있다. 한국에 배정했던 물량을 빼는 등 투자에 소극적이다. 르노는 유럽지역 공장을, GM은 미국 및 남미지역 공장을 우선시하는 모습이다. 일부 전문가는 “GM과 르노가 한국을 언제든지 철수할 수 있는 생산기지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쌍용차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의 지원 의지가 약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마힌드라는 지난해 3분기까지 11분기 연속 적자로 위기에 빠진 쌍용차에 23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했지만, 한국 정부와 산업은행의 투자(약 2700억원)가 선행돼야 한다고 전제 조건을 달았다. 업계에서는 3사의 해외 본사가 한국을 외면하는 것이 결국 후진적인 노사관계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한 외국계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강성 노조의 파업이 일상화된 한국에 생산 물량을 추가로 배정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국내 소비자 눈높이 못 맞춰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차 등 3사가 한국 소비자의 눈높이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지적도 많다. 한국 소비자들은 넓은 실내 공간과 세련된 인테리어, 최첨단 편의사양 등을 원하지만 3사가 이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차 출시 주기가 너무 길다 보니 급변하는 자동차업계 트렌드를 제때 반영하지 못하는 점도 판매 부진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현대·기아차는 그랜저, 팰리세이드 등 신차를 내놔 판매량을 끌어올렸다. 외국계 3사는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 ‘볼륨 모델’을 하나도 선보이지 못했다. 실적 악화로 연구개발(R&D) 비용이 부족해 신차 출시 주기가 점점 길어지고, 차량 판매가 줄어 R&D에 자금을 투입할 수 없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올해도 마땅한 신차가 없다. 일각에서는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외국계 완성차 3사가 5년 뒤에도 정상적으로 운영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장창민/도병욱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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