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이 제철이다. 전국의 덕장마다 1월 중순까지 곶감이 주렁주렁 매달린다. 햇곶감은 지금이 가장 맛있다. 곶감으로 유명한 상주, 산청 곶감과 달리 '흑곶감'으로 유명한 고장이 있다. 충남 논산의 양촌리. 이 동네에선 "감을 말리면 노랗던 감도 모두 까맣게 변하는 전설이 내려온다"고 말한다.
수령 300년의 감나무와 찬바람의 조화
양촌리는 '볕이 드는 골'이라는 뜻이다. 전북 완주군 운주면과 고개 하나로 맞닿아 있다. 해발 800m의 고지 도립공원으로 이름난 대둔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서늘하지만 동네는 동녘을 향하고 있어 낮에는 환한 볕이 든다. 일교차가 큰 지역이지만 이름이 양촌리라고 지어진 이유다.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하는 기후는 곶감 말리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다.
양촌리에는 수령 100년~300년에 이르는 감나무가 즐비하다. 감나무는 14만 그루가 넘는다. 200~400곳의 농가가 대를 이어가며 감 농사를 짓는다. 마을의 풍습에 따라 절기상 한로와 입동 사이에 드는 상강 다음날부터 감을 깎는다. 이산화황 훈증 처리 등 인위적인 건조시설 없이 지역 기후에만 의존하는 전통 방식을 여전히 고집하는 곳.
수분 많은 월하시 60일 건조…하늘이 돕는 결실
흑곶감이 만들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품종 때문이다. 이 지역에 자생하는 '월하시(두리시)'는 다른 감 품종보다 수분이 많다. 말리는 기간이 다른 곶감에 비해 2배 정도 길다. 일반 곶감은 30~40일 정도 말리지만, 양촌리에서는 60일 정도를 말린다. 감을 말리다보면 색이 어두워지면서 당도가 같이 올라간다. 월하시를 오래 말리면서 자연스럽게 색깔이 검게 변한다.
오래 말리지만 속을 자르면 반건시처럼 말랑하고 부드럽다. 당도는 훨씬 높은 데다 식감은 더 쫀득한 흑곶감이 만들어진다. 오래 말리는 건 농부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수분이 많아 감이 무거워 꼭지에서 떨어지기 쉽다. 자연 건조를 고집하다보니 비와 냉해 등에 약하다. "하늘이 도와줘야만 60일 곶감의 결실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권기용 양촌농협 유통팀장은 "토종 감나무에서 열린 감과 외부 개량종을 이 지역에 심어 얻은 감을 말려 비교해 보면 토종의 속이 더 꽉 차있다"고 한다. 나이를 얼마 안 먹은 땡감은 단단하고 색이 좋지만 막상 건조시키면 속이 알차지 못하다는 것. 오래된 나무일수록 감 품질이 뛰어나다.
1~2인 가구 '레트로 간식'된 곶감
곶감은 건강에 좋은 영양 간식으로 2~3년새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냉동실에 보관한 뒤 1년 내내 꺼내먹을 수 있어 1~2인 가구가 많이 찾는다. 이마트에서 곶감 판매량은 지난해 전년 대비 11.1% 증가했다. 올해 1월 들어서도 곶감 판매량이 전년 동기보다 22.2% 늘었다. 이 중 흑곶감은 4~5만원대(24개~30개 기준)의 가격으로 설 선물세트의 인기 상품이 됐다. 이마트 관계자는 "건강한 간식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마카롱 등의 매출은 크게 줄어든 반면 팥으로 만든 양갱과 모나카, 곶감 등 전통 간식의 판매량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곶감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
씨가 없다고 알려진 청도반시를 청도에서 가져와 양촌에 심으면 씨가 날까. 답은 '그렇다'다. 청도에 심었을 때만 씨가 나오지 않는다. 청도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립지대라 흙이 틀이하다는 설, 개화기에 수정을 매개하는 곤충이 침입하기 힘들다는 설, 모든 나무가 암나무라 수정되지 않는 열매를 맺게 되어 그렇다는 설 등이 있다. 아직 정확하게 과학적으로 증명된 건 없다.
감에서 떨어진 씨가 자생해서 열매를 맺으면 감이 열릴까. 정답은 '아니다'다. 감나무 씨를 그대로 심으면 '고욤나무'가 된다. 고욤은 감의 조상 격으로 떫은 맛을 갖고 잇다. 일반 감나무 또한 묘목 그대로 심으면 맛이 형편없고 떫기만 하다. 그래서 고욤나무가 묘목이 되면 이를 뿌리로 하고 감나무를 그 위에 접붙인다. 우리가 먹는 감은 모두 고욤나무의 뿌리에서 나왔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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