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피부 상태에 알맞은 원료를 배합해 만드는 맞춤형 화장품 시장이 태동하고 있다. 오는 3월 맞춤형 화장품 판매업 제도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서다.
취향을 중시하는 개인화 트렌드와 맞물리면서 업계에서는 맞춤형 화장품이 뷰티 시장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맞춤형 화장품 판매 매장에 필수로 배치해야 하는 조제관리사 자격시험에 응시자가 몰리는 등 관련 시장도 꿈틀대고 있다.
나만을 위해 만든 화장품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4년간 시범사업을 마치고 오는 3월 14일부터 맞춤형 화장품 판매업 제도를 본격적으로 시행한다. 맞춤형 화장품이란 개인의 피부 상태나 취향에 맞춰 원료를 배합해 만드는 제품을 말한다. ‘나만을 위한 화장품’인 셈이다.
현재 시장 규모는 50억원 수준이지만 화장품업계는 벌써부터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두각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업체는 스타트업 ‘톤28’이다. 피부 측정가가 소비자를 방문해 1 대 1로 T·O·U·N존 등 얼굴 네 부위의 수분·유분도, 탄력, 색소침착 정도 등을 측정한다. 64개로 나눈 피부 유형과 총 7250개에 달하는 자체 화장품 레시피에 따라 고객의 피부에 맞는 맞춤 화장품을 제작해 한 달에 한 번씩 배송해준다. 누적 고객 수가 1만여 명에 달한다. 정마리아 대표는 “올해 중 누적된 피부 측정 빅데이터를 활용해 맞춤형 화장품 제작 알고리즘을 구축하고 스마트팩토리를 설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피부 노화를 관리해주는 업체도 있다. 한국화장품은 타액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미래의 피부 노화도를 예측해 제품을 추천해준다.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세계 최대 전자쇼 CES에서 개인의 얼굴 크기와 피부 특성에 맞게 제작 가능한 ‘3차원(3D) 프린팅 맞춤 마스크팩’을 선보였다. 오는 4월 판매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이다.
화장품 조제관리사 인기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신설된 직종인 ‘맞춤형 화장품 조제관리사’ 시험에도 응시자가 몰렸다. 식약처에서 맞춤형 화장품 판매장마다 국가자격시험을 통과한 조제관리사를 두도록 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한국생산성본부가 제1회 자격시험 응시 접수를 시작하자 수천 명의 지원자가 몰리면서 사이트가 먹통이 됐다. 서울과 대전에서만 시험을 치르기로 한 데 대해 “지방 화장품 산업 종사자들을 차별하는 행태”라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글까지 올라왔다.
생산성본부는 이에 다음달 22일 치러지는 제1회 자격시험 고사장을 서울 경기 강원 충청 영남 호남 제주 등 전국 18개 권역으로 늘리기로 했다. 조제관리사 자격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숙명여대 미래교육원은 최근 맞춤형 화장품 조제관리사 교육과정을 신설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웬만한 화장품 연구원들은 자격증을 따려고 하는 데다 피부과 의사와 약사, 피부관리사 등도 맞춤형 화장품이 새로운 수입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적지 않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K뷰티 신성장동력으로 성장할 것”
맞춤형 화장품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는 ‘초개인화 트렌드’와 무관치 않다. 초개인화는 개인의 상황과 필요에 맞게 기업이 개별적인 맞춤 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개인의 취향과 라이프 스타일을 중시하는 젊은 소비자들을 겨냥한 마케팅 방법이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저서 《트렌드코리아 2020》에서 올해 소비시장의 중요한 키워드로 꼽기도 했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이미 수년 전부터 ‘체크슈머(자신의 피부에 맞는 원료를 꼼꼼히 따져 구매하는 소비자)’가 화장품업계의 큰손으로 떠올랐다”며 “장기적으로 이들이 맞춤형 화장품 시장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에선 한풀 꺾인 K뷰티 시장에 맞춤형 화장품이 새로운 동력이 돼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코스맥스 등 글로벌 ODM(제조업자개발생산) 업체의 제조력, 국내 뷰티업체의 뛰어난 기획력 등에 힘입어 K뷰티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국내 화장품업계가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된 뒤 큰 이슈가 없다”며 “맞춤형 화장품이 K뷰티 수출길에 새 바람을 불러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행 초기인 만큼 다양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전문가도 많다. 서로 다른 성질의 원료를 자체적으로 혼합하는 과정에서 방부제의 효력이 떨어지거나 기능성 원료를 과다하게 사용할 경우 알레르기 반응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원료 품질과 안전성에 대한 엄격한 관리가 가능한 이들이 현장에서 소비자들을 대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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