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다룬 ‘남산의 부장들’서 김규평 役
|궁정동 신? “극단적 감정에 힘들었어”
|‘내부자들’보다 훨씬 좋다는 사람도
|감정은 내보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
|변주 잘하는 곽도원에게 긴장감 느껴
[김영재 기자] 1979년 10월26일.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 부장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이른바 ‘10.26 사태’다. 동아일보에 26개월간 연재된 동명 논픽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이 흥미를 끄는 것은 이 작품이 시대극이라서가 아니라, “누아르”라서가 아니라, 18년 독재가 어떻게 해서 막을 내렸는가를 정면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배우 이병헌(49)이 있다. 그가 연기한 김규평이 박통(이성민)의 가슴에 발터 PPK를 겨누는 순간, 우리는 왜 김재규가 박정희를 쏠 수밖에 없었는지에 다시 골몰한다. 약 40년 전으로 돌아가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維新)의 심장을 쏜 기분이 매우 궁금했다. “특히 그 신은 대사에 극단적 감정을 실어야 해서 참 힘들었죠.”
눈 밑 떨림조차 연기하는 초현실적 사내 이병헌. ‘백두산’에서 내려와 ‘남산’ 소재 중앙정보부 부장으로, 즉 산에서 산으로 이동한 그를 1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감정은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마법처럼 드러나는 것이라는 이병헌의 연기론에는 어떤 ‘진심’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조바심보다 나의 것에 대한 자부심이 더 필요하다는 깨달음이 묻어났다. 다음은 그날의 재현에 왜곡을 경계한 그와의 총 일곱 문답.
―영화 ‘백두산’으로 만난 게 어제 같은데, 또 산이네요. 언론시사회에서 “웰메이드”라는 표현을 사용했죠. 무엇이 이 영화를 웰메이드로 만들었을까요?
“기술시사 때 처음 봤어요. 끝나고 감독님께서 ‘어땠어요?’ 하시길래, 너무 잘 만들었다고 말씀드렸죠. 음, 근현대사 중 가장 드라마틱하고 중요한 사건을 다루는 영화잖아요. 누아르 장르의 느낌도 잘 살렸고요. 그런 측면에서 웰메이드라고 한 거 같아요.”
―그럼 ‘남산의 부장들’은 그간의 필모그래피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작품인가요?
“아마 ‘달콤한 인생’을 좋아하셨던 분이시라면 분명 이 영화도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어휴, 난 진짜 순발력이 좋은 거 같아.(웃음) 어떤 분은 우민호 감독님께 ‘내부자들’보다 훨씬 좋았다고 말씀하셨대요. ‘와! 그 정도까지?’ 싶었죠.”
―극 중 포마드 바른 머리가 인상적이에요. 그 시절 스타일로 완벽히 변신했어요.
“너무 예전 스타일로 분장하면 자칫 피식하고 웃음이 나올까 봐 걱정이 컸어요. 그런데 다른 배우(곽도원, 이성민, 이희준)와 함께 촬영 전 카메라 테스트를 하고 나니 정말 그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더라고요. 그래서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대로 시작했죠. 카메라 테스트 때 찍은 사진을 다른 감독님께 보여 드린 적이 있었는데, ‘우와 이 영화 되게 보고 싶다’ 하시더라고요. 근데 김지운 감독님은 그 사진에 웃으셨어요.(웃음)”
―‘감정 충만한 무표정’이라는 역설을 해냈어요.
“우선 극단적 클로즈업에 도움을 받았죠. 누아르 장르는, ‘달콤한 인생’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인물의 미묘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극단적 클로즈업이 많이 등장해요. 그 클로즈업은 배우가 맞닥뜨리는 어떤 고비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참 마법 같은 순간이죠. 일부러 감정을 보여주려고 하면 안 돼요.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거든요. 감정을 일부러 보여주려고 하기보다 가슴에 충만히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해요. 그러면 그 감정이 관객분들께 전달되는 아주 마법 같은 순간이 생기죠. 이번 ‘남산의 부장들’ 때도 그렇게 연기했어요. 감정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전달된다는 믿음으로요.”
―이병헌이 하면 뭐든 ‘연기’와 연관 짓는 대중의 인식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인터내셔널 예고편 말미 눈가가 살짝 떨리는 모습을 두고 제작보고회 때 ‘마그네슘 부족 연기’라는 표현까지 나왔어요. 고맙나요? 아니면 부담되나요?
“칭찬이니까 당연히 기분은 좋죠. 근데 그 마그네슘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화학적으로 접근하는 건 사실 처음 봤어요.(웃음)”
―계산 하에 이뤄진 연기가 정말 아닌가요?
“습관이죠. 아마 ‘내부자들’ 때도 눈떨림 이야기가 나왔을 거예요. 작품 속 심각하고 긴장된 상황에 들어가려고 하면 저도 모르게 움직이는 것이 생겨요. 때에 따라 그게 안 느껴질 때도 있고 반대로 느껴질 때도 있고요. 근육이 직업병에 걸렸달까?(웃음)”
―곽도원(박용각 역) 씨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곽도원 배우 연기에 ‘어? 이거 뭐지?’ 이런 당황을 느꼈어요. 곽도원 배우는 매 테이크가 너무 다른 변주의 화신이에요. 변주에 진짜 능통한 사람이죠. 터뜨릴 줄 알았는데 싹 내려가고. 조용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터뜨리고. 늘 기분 좋은 긴장감과 함께 같이 촬영했어요. 왜냐하면 직구로 던지든 커브로 던지든 그 공을 잡아야 하는 건 저니까요. 만약 제가 순발력이 없다면 그 공은 못 잡는 거죠. (기자-‘나는 곽도원의 직구와 변화구를 모두 잡아냈다’로 이해해도 될까요?) 하여간 빈틈을 보이면 안 된다니까.(웃음)”
(사진제공: BH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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