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과 관련해 중국 우한 거주 국민의 격리 수용 장소를 하루 만에 충남 천안에서 아산과 충북 진천으로 바꾼 것을 두고 지역 주민 등의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아산·진천 주민들은 “합리적 기준도 절차적 타당성도 없는 독단적인 결정”이라며 집단 시위에 나섰다. 일각에선 천안이 아산·진천보다 인구가 많다는 것을 고려해 ‘총선 표 계산’을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바이러스 증상이 있는 사람까지 국내로 데려올 것인지를 두고서는 외교부(“안 된다”)와 보건복지부(“된다”)가 딴소리를 해서 혼란을 부추기기도 했다. 우왕좌왕하는 정부 정책이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고, 지역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객관적 기준으로 수용 지역 정했다지만
김강립 복지부 차관은 2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중앙사고수습본부 3차 회의 후 브리핑을 열어 “중국 후베이성 우한 귀국 국민의 임시생활시설을 충남 아산의 경찰인재개발원과 충북 진천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두 곳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김 차관은 “전염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가시설인 공무원 연수원, 교육원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며 “연수원 교육원 중에선 시설 수용 능력, 인근 지역 의료시설 위치, 공항에서 시설 간 이동거리, 지역 안배 등을 감안했다”고 했다.
이런 기준으로 검토한 결과 의료시설 접근성과 수용 능력 등에서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이 1순위로 나타났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과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도 수용 적합 시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충남에서만 두 곳을 선정하면 지역 형평성이 떨어진다는 판단 아래 다른 한 곳은 진천의 인재개발원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김 차관은 두 곳의 수용시설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귀국 희망 국민 수가 당초 150여 명에서 700명 이상으로 증가해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국내로 데려오는 국민은 감염 증상이 없는 사람에 한정하기로 했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이날 오전 “유증상자도 함께 데려오겠다”고 밝혔는데 불과 반나절 만에 말이 바뀐 것이다. 중국 검역 법령은 감염 증상이 있는 사람은 출국을 금지하고 있어 애초에 유증상자 이송 계획은 무리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 이송은 30, 31일 네 대의 전세기로 나눠 한다. 귀국 국민은 14일 동안 임시생활시설에서 지낸다. 입소 기간 외부 출입과 면회는 금지된다. 14일 동안 특별한 증상이 없으면 귀가한다.
아산·진천 “결정 수용 못해”
아산과 진천 주민들은 강력 반발했다. 이날 오후 아산시 온양5동 이장단협의회와 주민자치위원회를 비롯한 주민 60여 명은 트랙터와 경운기 등 농기계 다섯 대를 몰고 경찰인재개발원 진입로를 막은 채 기습 시위를 벌였다. 송달상 온양5동 이장단협의회장은 “당초 천안으로 결정했다가 주민 반대로 아산으로 다시 정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아산시의회도 기자회견을 열고 “천안에서 갑자기 아산으로 변경한 것은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 내부적인 힘의 논리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천안의 유권자가 아산·진천보다 많다는 것을 노린 정치적 결정이란 비판이다.
경찰인재개발원이 수용 시설로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아산을 지역구로 둔 이명수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아산갑)은 “경찰인재개발원 인근에는 50여 가구가 거주하는 사래마을과 아파트 단지 두 곳이 있어 바이러스 전염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염 가능성을 줄이려면 김포공항과 가까운 시설을 활용하는 것이 합리적(천안아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진천군의 반발도 거세다. 송기섭 진천군수는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인근은 500m 안에 아파트 단지가 몰려 있는 인구 밀집 지역이라 주민 안전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서민준/임락근 기자/아산=강태우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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