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명 위원장은 선거 운동에서 ‘제1노총 위상 회복’을 역설했다. 당선되면 가장 먼저 기업은행 노조를 찾겠다고 했다. 22일 방문은 공약 이행인 셈이다. 기업은행 노조는 2일 청와대가 윤종원 행장을 임명하자 ‘낙하산 인사’라며 출근 저지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일축했지만 출근 저지는 계속됐다. 금융회사 대표에 대한 노조의 출근 저지 기록을 14일에서 26일로 갈아치우면서 말이다. 김 위원장이 중재에 나서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여당과 금융당국은 청와대와 다른 입장으로 급선회했다.
사측 서명 빠진 합의안
창원 회동은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585명 대량 해고로 불거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금속노조 등은 회동 직후 기자회견에서 ‘비정규직 재고용을 위해 상호 노력’ 등 5개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매우 특이한 점은 사측의 서명 없는 단위 노조만의 합의였다는 것이다. 사측은 “공감대 형성 정도”로 선을 그었다. 전향적인 합의 도출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기업은행 노조는 큰 수확을 거뒀다. 대통령의 연초 입장 표명이 머쓱할 정도다. 희망퇴직 문제 해결, 노조추천이사제 추진, 노조 동의 없는 임금체계 개편 금지 등을 담은 ‘노사 공동선언’을 27일 얻어냈다. 28일에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게서 낙하산 인사에 대한 유감 표명까지 나왔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민주노총은 사측 서명도 빠진 합의안을 왜 발표했을까. 노사 관계에 밝은 한 대학교수는 “김 위원장에 대한 견제구”라는 분석을 조심스럽게 내놨다. 제1노총 위상 회복을 외치는 김 위원장의 첫 현장 방문에 쏠리는 관심을 분산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보면 주자의 진루를 견제하는 공이 아니라 타자의 1루 출루를 도운 빈볼이 된 꼴이다.
실종된 노사 자치 원칙
기업은행의 노사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노사 자치는 어디에도 없었다. 사측의 두 손은 꽁꽁 묶였다. 당정이 ‘한국노총에 휘둘렸다’는 비판보다 ‘연대 불가피’라는 실리에 방점을 둔 탓이다. 총선을 앞두고 탄력적 근로시간제 보완책 등 정부 정책에 어깃장만 놓는 민주노총에 더 휘둘려선 안 된다는 인식도 있었으리라. 노사 관계 전문가들은 바로 여기에 주목한다. 한국노총의 제1노총 위상 회복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오인될 여지를 줬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세 규합에 적극 나설 게 뻔하다. 민주노총은 제1노총에 걸맞은 대우를 요구하며 강성으로 치달을 명분을 확보했다.
양 노총의 22일 행보는 올해 노동계가 심상치 않을 것임을 알려주는 신호탄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걱정스럽다. 양 노총의 주도권 다툼은 고스란히 경제 주체들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2020년 새해 나라 안팎의 여건은 노동계도 국가 경제라는 큰 틀 안에서 노동 운동을 봐야 한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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