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인 윤종원 IBK기업은행 신임 행장은 임명된 지 27일 만인 어제 처음 본사로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출근 저지 투쟁에 나섰던 노조에 대폭 양보한 덕입니다. 윤 행장은 노조의 숙원인 노동이사제 도입 추진 등을 약속했습니다.
역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을 역임하다 작년 7월 한국가스공사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채희봉 사장도 같은 날 비정규직 노조와 극적 합의를 했습니다. 이달 28일부터 대구 본사에서 파업에 돌입했던 가스공사 비정규직 노조는 이틀 만에 철회했지요. 노사는 “다음달 7일 노사가 집중 협의를 벌이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노조 측 요구 사항을 사측이 상당부분 수용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회사는 관련 보도자료에서 “고용 불안에 노출된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과 고용 안정을 통해 공공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두고 협의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스공사의 전체 직원(정규직)은 4000여 명에 달합니다. 별도로 비정규직이 1300여명 있습니다. 이번에 파업한 비정규직은 미화 및 시설관리 인력으로, 모두 용역회사 소속 직원들입니다. 총 670명입니다.
이들이 요구하는 건 크게 두 가지입니다. 가스공사 본사의 정규직으로 직접 재고용하라는 것, 그리고 ‘정년 만 65세’를 보장하라는 것입니다.
가스공사는 비정규직 노조의 두 요구에 대해 난색을 표해 왔습니다. 상당수 공기업이 기존 비정규직을 신설 자회사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죠. 가스공사 측은 수 차례에 걸쳐 “새 정부가 2017년 7월 제시했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라 협의하겠다”고 했습니다. 정부 가이드라인은 각 기관이 직접고용 또는 자회사 정규직 채용 방식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특히 비정규직 노조의 두 번째 요구인 ‘정년 65세 보장’에 대해선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해 왔습니다. 본사 직원들의 정년이 모두 60세인 상황에서, 새로 정규직 전환 혜택을 주는 사람들에게만 추가로 ‘정년 5년 연장’ 특혜를 줄 수는 없다는 거지요.
미화·시설관리 비정규직 노조도 할 말이 있습니다. 기존 용역회사에 계속 다닐 경우 정년 65세를 보장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가스공사 측은 “비정규직 노조가 파업을 철회했으나 일시적인 조치일 뿐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민주노총 소속인 가스공사 노조원들 사이에선 비정규직에 대한 반발 기류도 생기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을 전부 정규직으로 채용할 경우 수익성이 더 떨어질 게 뻔하기 때문이죠. 이미 가스공사 주가는 지난 1년 사이 40% 넘게 떨어진 상태입니다. 비정규직 노조가 일종의 ‘정년 연장 특혜’까지 요구하자 그런 분위기가 더 강해졌다고 합니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 노조의 발언권이 세졌습니다. 이를 등에 업고 노조가 조금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보인다면, 최종적으로 노사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겁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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