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전세기' 막판까지 오락가락…'민낯' 드러낸 對中외교

입력 2020-01-30 17:24   수정 2020-01-31 02:13


우여곡절 끝에 중국 우한에 체류 중인 한국 교민을 이송할 전세기가 30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했다. 그러나 출발 당일까지 출발 시간이 지연되고 이송 인원이 줄어드는 등 혼선을 빚으면서 정부의 늑장 대응과 부처 간 불협화음, 대(對)중국 저자세 외교 등 정부의 위기수습 능력이 바닥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현지에서는 “초라한 대중국 외교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정부는 이날 밤 9시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발원지인 후베이성 우한에 잔류한 교민들을 수송할 전세기를 띄웠다.

전세기는 당초 오전 10시 한국을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출발 몇 시간을 앞두고 급작스럽게 연기됐다. 중국 정부로부터 전날 저녁 한 대의 전세기에 한해 밤 시간대 중국 입국을 허용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받은 이후 예정대로 운항하기 위한 협의를 계속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탑승자는 귀국 희망자 720여 명 중 우한 폐렴 증상이 없는 교민 350~360명으로 정해졌다.

당초 정부는 이날 오전 두 대의 전세기를 중국에 보내는 방향으로 중국 정부와 협의하고 있었다. 전날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도 이 같은 일정을 발표했고, 우한 총영사관은 현지 교민에게 구체적인 집결 일정까지 공지했다. 그러나 현재 두 번째 전세기 운항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여러 국가가 한꺼번에 자국민 이송에 나서면서 현지 중국인에게 불안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중국 정부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외교가에서는 그러나 정부가 중국과의 협의 결과를 지나치게 낙관하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지적도 적잖다. 중국으로부터 확답을 받기도 전에 국내 여론을 의식한 나머지 성급하게 발표했다는 것이다. 외교부에서는 ‘중국 내 행정적 절차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는 것뿐’이라며 결과를 낙관하고 있었다.

전날 정부가 우한 폐렴 증상이 있는 교민까지 국내로 데려오겠다고 발표했다가 급하게 뒤집은 것도 이 같은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구체적인 협의 사항에 대해서는 추가해드릴 사항이 없다”고 말을 아꼈지만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중국의 대외적인 위신이라고 할까, 각국이 너무 부산을 떤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책임을 중국 정부에 떠넘기는 발언을 했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전세기를 투입해 자국민을 이송하는 상황이라 비판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30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 “미국과 일본이 (전세기를) 우선 배정받았다”며 “중국이 어떤 나라를 중시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수송작전 난맥상을 두고 한·중 관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중국 방문에서 ‘중국몽에 한국이 함께하겠다’고 발언하는 등 대중 밀착외교를 해왔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중국이 한국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모양새여서다. 외교가에서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한한령, 홍콩 사태, 신장위구르자치구 인권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중국에 공을 들였지만 ‘결국 돌아온 건 하대(下待)뿐’”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임락근/이미아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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