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참사를 일으켜 놓고도 도리어 통계만 탓하는 청와대와 정부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이달 말 한국경제학회가 발간하는 한국경제포럼에 일자리 관련 논문을 게재한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전 통계청장)의 말이다. 발단은 지난해 10월 말 정부의 비정규직 통계 발표다. 2018년과 2019년 1년 사이에 비정규직이 무려 87만명이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자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비서관, 강신욱 통계청장, 기획재정부 및 고용노동부 차관이 합세해 해명에 나섰다. 비정규직 증가는 조사방식 변경 탓이고 실제로는 고용 상황은 나아졌다는 주장이다.
유 교수는 논문에서 정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국제노동기구(ILO) 조사방식을 적용한 탓에 비정규직이 급격히 늘었다는 해명에 대해서는 조사방식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 따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종전 조사방식에서도 유사한 설문 문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비정규직이 단기간에 급증한 것은 통계 탓이 아니라 정부의 일자리 정책 때문이라고 못박았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본격 추진된 2018년에서 2019년 1년 새 청년과 노인층 중심으로 주당 17시간 미만의 단시간 근로자수가 크게 늘어났다. 새로 생겨난 일자리도 64%가 임시일용직인 반면 40대 정규직 일자리는 크게 줄어들었다. 비정규직이 증가한 통계 수치는 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만들어 낸 고용 참사를 보여주고 있다고 유 교수는 강조했다. 경제의 허리를 떠받치는 30대와 40대의 정규직 노동시장이 붕괴한 것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결과라고도 했다. 유 교수는 “올해 더욱 심각한 일자리 참사가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고율의 최저임금 인상과 무리한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양질의 일자리는 감소한 반면 정부 재정으로 단기 일자리를 만들어 근근히 떠받치는 상황에서 기저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정부까지 나서서 비정규직 통계를 부정하는 상황이 초래된 이유는 전 세계에서 한국만 유일하게 복잡한 비정규직 기준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를 비정규직으로 볼지 노사간 입장차가 매우 큰 상황에서 2002년 노사정 합의로 비정규직 개념이 정해졌다. 한시적 근로자(기간제 등), 시간제 근로자, 비전형근로자(파견·용역·특수형태 등) 등 분류체계도 매우 복잡하다. 국제기준인 임시직 근로자(temporary workers)로 단순화할 필요가 크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최종석 전문위원 js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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