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내 DNA에 쓰인 인류 역사

입력 2020-01-30 17:27   수정 2020-01-31 00:18

바위 같은 무생물은 땅속에서 고온, 고압에 의해 만들어진 우연의 산물이다. 그러나 칼과 같은 인공물은 설계도가 대장장이의 머릿속이나 외부의 별도 공간에 존재한다. 반면 살아 있는 것은 자신의 몸속에 설계도를 지니고 있다. 40억 년 동안 설계도는 계속 전해졌다. 몸속에는 생명에 관한 모든 역사가 DNA(핵산)에 보존돼 있다.

시간과의 싸움을 버텨낸 물질은 단 둘뿐이다. 금과 DNA다. 생명은 DNA를 택해 자신의 역사를 쓰고 설계도를 만들었다. DNA에 쓰인 역사 가운데 중요한 부분만 본다면 10만 년 인류 진화가 될 것이다. 침팬지에서 인간으로 진화할 때도 설계도 속 DNA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것이 보존돼 인류가 탄생했다.

개개인의 DNA에는 집단적 동일성과 개별적 독특함이 함께 존재한다. 다윈 덕분에 우리는 초기 생명에서 현재의 나까지 연결돼 있으며, 중간에 설계도가 조금씩 변화(진화)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세포생물에서 다세포생물로, 다시 척추동물로 그리고 영장류로 변화될 때마다 설계도는 크게 바뀌어왔다.

초기 인류가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서 번성한 이후 인류의 아프리카 탈출이 시작된다. 남방계 아시아인이 아라비아반도 해안선을 따라 동남아시아로 가고, 메소포타미아로 올라간 인류는 왼쪽으로 가 유럽인이 되고 오른쪽으로 가 북방계 아시아인이 됐다. 아시아인은 유럽인에 비해 ‘동안(童顔)’이다. 1920년대 유럽에서는 유럽인이 가장 진화된 인종이라고 생각했다. ‘유아형 얼굴 형태’가 진화가 덜 된 지표라 여겼다. 그러나 곧 동안이 더 진화된 형태이고, 아시아인이 오랜 선택에 의해 진화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더 흥미로운 점은 게놈 DNA 분석을 통한 미래 질병 예측이다. 나이가 오십만 넘어도 암, 당뇨, 고혈압 중 어떤 것이 노후에 나를 위협할지 걱정한다. 주변 친척 중에 암, 당뇨 등으로 누가 죽으면 나에게도 문제가 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가족 DNA 설계도가 다른 사람보다 비슷해서 같은 결과가 오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장 DNA 게놈을 분석하는 게 몇십만원으로 가능해졌다. 일부 변이만 알아내면 몇만원대로 할 수 있다. 2017년 미국 식약청은 게놈 DNA 분석이 진단은 아니지만 적극적 질병회피수단이 되는 것을 인정해 13개 품목의 허가를 내줬다. 미국 등 선진국은 4차 산업혁명의 미래로 보건의료산업의 DNA 분석법 도입에 적극적이다.

정부가 생명윤리와 공공보건정책을 앞세워 미래 정책에서 유연함을 잃고 결정을 못하는 사이 한국이 서양의 정보예속국으로 다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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