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장난감 찾는 키덜트…레고값 올려놨다

입력 2020-01-30 17:15   수정 2020-01-31 02:05


서울 역삼동 레고코리아 본사 지하에는 매년 11월 50m가 넘는 줄이 늘어선다. 1년에 한 번 가격을 최대 40% 깎아주는 할인 행사가 열려서다. 줄을 선 사람들은 주로 30~40대. 지난해 방문했을 때도 줄을 선 60여 명의 어른 가운데 동행한 어린이의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은 11명뿐이었다. 행사장에선 30세가 훌쩍 넘어 보이는 ‘키덜트(아이 같은 감성과 취향을 지닌 어른, kids와 adult의 합성어)’들이 최신 모델은 물론 과거에 나온 빈티지 모델을 구매하고 있었다.

화장품 회사에 근무하는 이아름 씨(34)는 “오후 7시면 행사가 끝나기 때문에 회사에 오후 반차를 쓰고 왔다”며 “평소 모으는 선박 관련 모델을 구매 제한 한도(5개)를 꽉 채워서 샀다”고 말했다.

35년 전 게임기 재발매 2분 만에 완판

빈티지 장난감이 3040세대의 어릴 적 향수를 등에 업고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들은 유년기의 추억을 소환하는 아이템을 사기 위해 두툼한 지갑을 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1990~2000년대 출시됐던 레고 모델과 바비인형 등은 출시가보다 열 배 넘는 가격에 거래된다. 키덜트들이 수집하는 상품은 블록이나 인형에 그치지 않는다.

1985년 대우전자에서 발매한 게임기 ‘재믹스’는 지난해 복각판이 출시됐다. 어린 시절 즐겼던 게임 ‘남극 탐험’ 등을 소환하는 타임캡슐 같은 이 게임기는 온라인 판매 2분 만에 450대가 전량 팔려나갔다. 28만5000원이라는 높은 가격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인터넷 중고거래 시장에서는 이미 가격이 50만~100만원으로 뛰었다.

빈티지 장난감은 재테크 수단이 되기도 한다. 2015~2016년 ‘레테크(레고+재테크)’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레고가 대표적이다. 1992년 출시된 비룡성 모델은 출시가(7만원)보다 30배 가까이 오른 200만원 선에서 거래된다. 2016년 5만5000원에 출시된 바비인형(시크시티슈트 모델)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19만원에 팔린다. 레고 수집이 취미인 김창희 씨(34)는 “돈이 될 것 같은 모델이 나오면 재테크 목적으로 수십 개씩 사놓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빈티지 장난감 가게 급증


키덜트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 중고나라나 해외 경매 사이트 이베이 등이 이들이 ‘희귀템’을 구하는 주된 통로다. 김씨는 “브릭나라, 브릭동네, 브릭인사이드 등 국내 주요 브릭 동호회가 레고 수집가들의 놀이터”라며 “공동구매를 하기도 하고 동호회가 직접 전시회 등을 열기도 한다”고 말했다.

빈티지 장난감 동호회들은 오프라인 공간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성인 동호회가 각종 대회를 휩쓸고 있는 ‘미니카’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동호회 명의로 미니카 카페를 열기도 하고 지역별로 대회도 개최한다. 미니카 업체인 ‘타미야’가 서울, 부산, 수원 등지에서 연 공식 대회가 이달에만 7건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회에 나가는 미니카는 보통 25만원을 훌쩍 넘고 각종 튜닝을 하기 때문에 대당 60만~70만원은 투자해야 한다”며 “문방구 앞에서 갖고 놀던 아이들의 취미에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성인들의 취미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키덜트가 늘면서 서울 강남이나 이태원 등에도 빈티지 장난감 가게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빈티지 장난감 판매점 ‘미술소품’을 운영하는 신지섭 씨는 “맥도날드에서 해피밀을 먹으면 주던 장난감이나 과거 발매된 푸우 인형을 구하는 사람들이 2~3년 새 빠르게 늘었다”고 말했다.

장난감 회사들도 키덜트 공략에 적극적이다. 이들을 겨냥해 인기를 끌었던 모델을 재발매하거나 성인용 모델을 내놓기도 한다. 레고그룹은 지난해 10월 2019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인 신형 ‘랜드로버 디펜더’ 자동차를 재현한 ‘레고테크닉 랜드로버 디펜더’를 선보였다. 타미야가 내놓은 아반떼, i20 등 현대자동차 모델의 미니카는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김순신/이주현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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