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신발왕국'…박연차 회장 별세

입력 2020-01-31 18:04   수정 2020-02-01 00:46

한국 신발산업의 ‘거목(巨木)’ 박연차 태광실업그룹 회장(사진)이 31일 숙환(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5세.

박 회장은 지병인 폐암이 악화돼 최근 삼성서울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회사와 병원 측에 따르면 박 회장은 최근 며칠 동안 병세가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관계자는 “박 회장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며 “장례는 평소 고인과 유족들의 뜻에 따라 비공개 가족장으로 최대한 간소하고 조용하게 치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1945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1971년 태광실업의 전신인 정일산업을 경남 김해에 설립했다. 김해에 뿌리를 둔 이 회사는 베트남과 중국 공장에서 ‘나이키’ 상표로 신발을 생산하는 회사다.

박 회장은 해외로 시야를 넓혀 베트남과 중국, 인도네시아 등 4개국에 공장을 세웠다. 베트남에서는 국빈 대우를 받을 정도로 유명하며, 사업을 위해 김해~하노이 직항로 개설을 주도하기도 했다. 발전사업에도 뛰어들어 2017년 태광실업그룹은 베트남에서 남딘 화력발전소 최종 허가서를 받았다. 태광실업은 2018년 매출(연결 기준) 2조2688억원을 기록하며 처음 2조원대를 넘어섰다. 박 회장은 2012년 일렘테크놀러지, 2014년 정산애강 등을 인수하며 태광실업그룹을 작년 기준 매출 약 3조8000억원, 임직원 약 10만 명 규모로 성장시켰다.

박 회장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이름이 알려졌다. 박 회장은 세종증권과 농협 자회사인 휴켐스의 매각·인수 과정에서 290억원의 세금을 탈루하고, 자신의 사업과 관련해 정·관계 인사들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2008년 구속기소됐다. 이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형인 건평씨 등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줄줄이 사법처리됐다.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였다.

박 회장이 별세하면서 향후 승계구도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후계자로는 장남인 박주환 태광실업 기획조정실장이 일찌감치 낙점됐다. 박 회장은 태광실업 지분 55.39%를 가지고 있으며, 박 실장은 39.46%를 보유한 2대 주주다.

태광실업이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지난해 8월 한국투자증권을 대표주관사로 선정하자 박 실장의 승계가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박 회장이 별세하면서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태광실업 상장이 당분간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상장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지분 상속 문제를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정화 씨와 아들 박 실장, 딸 박선영 씨, 박주영 정산애강 대표, 박소현 태광파워홀딩스 전무 등이 있다. 박 회장의 빈소는 자택이 있는 김해 조은금강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차려진다. 발인은 3일이다.

김재후/이고운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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