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이 실현되면 3개 나라(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브루나이)가 차지하고 있는 섬 보르네오는 인도네시아·브루나이 2개국의 수도가 있는 섬이 된다. 새 수도로 지정된 동칼리만탄은 남쪽에 치우친 자카르타와 달리 인도네시아 군도의 정중앙이면서 환태평양조산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조코위 대통령이 수도 이전의 성공 사례로 꼽은 곳은 한국의 세종시다. 자카르타는 서울처럼 경제 중심지로 남기고, 행정 기능만 새 수도로 이전한다는 구상이다. 인도네시아가 1500㎞ 떨어진 곳으로 수도를 옮기려는 것은 이 나라의 지리적 특수성에 사회·경제적 문제 의식이 결합한 결과다. 인도네시아는 1만7508개의 섬으로 이뤄진 세계 최대 군도 국가다. 세계 4위 인구 대국(2억7352만 명)이면서 14번째로 면적이 넓은 나라(191만3580㎢)이기도 하다. 남한 면적의 19배나 된다. 단일 섬 기준으로 봐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뉴기니(면적 82만33㎢)를 포함해 보르네오(74만3107㎢·3위), 수마트라(47만3605㎢·6위), 셀레베즈(18만9034㎢·11위), 자바(12만8884㎢·13위) 등은 웬만한 나라보다 크다. 국토의 동쪽에서 서쪽 끝의 직선거리가 서울에서 자카르타까지의 거리와 비슷한 5245㎞에 달한다. 남북으로는 부산에서 사할린섬까지 거리에 맞먹는 1760㎞다.
적도를 따라 약 4만㎞인 지구 둘레의 8분의 1을 점한 나라이다 보니 지역차가 클 수밖에 없다. 자바족과 순다족 등 300여 개 종족이 수백 가지 지역언어를 사용한다. 인도네시아보다 면적이 5배 넓은 미국이 2016년 대선에서 비슷한 수의 유권자(2억2400만 명)를 위해 설치한 투표소가 11만7000곳이었는데, 2019년 5월 인도네시아는 80만9500개의 투표소를 마련해야 했다.
인도네시아의 역대 통치자들에게 이렇게 광범위한 도서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일은 최대 과제였고, 수도 이전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숙원 사업이었다. 20세기 초반 네덜란드 식민 정부가 처음 추진한 이후 국부로 추앙받는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과 32년간 군부독재로 장기집권한 수하르토 정권도 시도했지만 끝내 해내지 못한 일이다. 매번 발목을 잡은 것은 천문학적인 이전 비용과 자카르타에 정치·경제적 기반을 두고 있는 기득권층의 반발이었다.
사업가 출신 정치 신인인 조코위 대통령은 자카르타 주지사를 지내면서 전국구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정치 기반인 자카르타를 떠난다는 결정은 정치생명을 건 모험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도 절반을 넘는 국민이 수도 이전을 지지하는 것은 옮기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때문이다.
첫째는 자카르타의 고질적인 인구과밀 현상이다.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섬은 전체 인도네시아 면적의 7%에 불과하지만 거주 인구는 전체의 절반이 넘는 1억4100만 명에 달한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섬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수도권의 인구 밀집은 더 심각하다.
면적이 605㎢인 서울보다 조금 넓은 자카르타(661㎢)에 1032만 명이, 한국의 수도권 절반 넓이인 대도시권역(6400㎢)에 3100만 명이 몰려 산다. 국토 면적의 0.3%에 불과한 대도시 권역에 전체 인구의 10% 이상이 밀집해 있다. 인구 과밀은 악명 높은 교통체증과 환경오염 문제로 이어진다. 자카르타 시내는 차량 평균 속도가 시속 10㎞ 미만일 정도로 체증이 심하다.
시민의 안전도 수도 이전에 힘을 싣는 요인이다. 자카르타는 해발고도가 평균 7.92m에 불과해 홍수와 쓰나미 등에 취약하다. 전체 지역의 40%가 해수면보다 고도가 낮다. 입지 자체가 바다와 맞닿은 늪지대인 데다 13개의 강이 얽혀 있어 우기 때마다 물난리로 홍역을 치른다. 자카르타 주지사의 능력은 홍수 대비로 판가름난다고 할 정도다. 가뜩이나 지대가 낮은데 과도한 지하수 개발과 고층 건물 건설 등의 영향으로 자카르타의 지반은 매년 평균 7.5㎝씩 내려앉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자카르타를 ‘세계에서 가장 빨리 침몰하는 도시 중 하나’로 꼽았다. 화산과 지진활동이 활발한 환태평양조산대(불의 고리) 위에 세워진 자카르타는 세계에서 지진에 가장 취약한 대도시이기도 하다.
조코위 대통령의 정치적 야심이 반영된 승부수라는 분석도 있다. 오랜 독재를 겪은 인도네시아는 대통령의 임기를 재선까지로 정하고 있다. 조코위 대통령이 일찌감치 두 번만 하겠다고 밝혔지만 지지자들은 3~4선도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하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인구가 집중된 자바섬의 탄탄한 정치적 기반 위에 새 수도가 있는 보르네오까지로 기반을 확장하면 장기집권을 꿈꿀 만하다는 계산이다. 조코위 대통령의 투쟁민주당(PDIP)은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의 딸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 전 대통령이 만든 정당이어서 집권 1기 조코위 대통령은 ‘메가와티의 꼭두각시’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조코위 대통령의 수도 이전을 메가와티의 그림자 벗어나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역대 정권이 모두 실패한 만큼 회의론이 만만찮다. 자카르타 등록 자가용 1700만 대 중 정부 차량은 14만 대, 자카르타 인구에서 공무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9% 안팎이어서 과밀 해소 효과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9%(2019년 10월 기준)에 달하는 높은 지지율은 조코위 대통령이 수도 이전을 밀어붙이는 힘의 원천이다.
수도 이전의 최대 과제는 466조 루피아(약 40조원)로 예상되는 비용이다. 이전 비용 중 19%를 정부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민관 협력과 민간투자로 조달할 계획이다. 초반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지난 1월 초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일본 소프트뱅크가 새 수도 투자를 제안했다. 루후트 판드자이탄 인도네시아 투자장관은 “소프트뱅크가 400억달러(약 46조3600억원) 가까이 투자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민간투자로 조달하려는 액수(약 30조원)를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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