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지난해 세계 49개 중앙은행이 금리를 71차례 인하한 덕에 세계 경제가 2.9% 성장했다”며 “이런 통화정책 공조가 없었다면 세계 경제가 불황에 빠질 수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비록 우리가 완화적 통화정책을 칭찬하고 있지만 장기간의 저금리로 리스크가 쌓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세계 경제 상황에 대해선 “무역 긴장이 이전보다 줄었고 무역과 산업생산이 바닥을 치고 있다”면서도 “성장은 부진하고 리스크는 여전하다”고 진단했다.
기후 변화와 관련해선 “우리는 저생산, 저성장, 저금리, 저물가 등 4저(低)에 직면해 있다”며 “기후 변화 대처를 위한 적절한 행동이 투자와 성장을 끌어올릴 ‘실버 불릿(silver bullet·묘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후 변화가 단순한 리스크가 아니라 성장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인터뷰는 한국경제신문을 비롯해 중국 신화통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독일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차이퉁, 스페인 엘파이스 등 국가별로 한 곳씩 10개 언론이 참석한 가운데 워싱턴DC IMF 본부에서 한 시간가량 이어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세계 경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봅니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당장 영향을 받는 건 중국의 국내 수요지만 (다른 나라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제조업 공급사슬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각국의 여행금지 조치 또한 단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겁니다. 장기적으로는 바이러스 봉쇄를 위한 조치가 얼마나 빨리 이뤄지는지, 그런 조치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평가해야 합니다. 2003년 사스(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확산 땐 초기에 경제가 크게 하락했지만 이후 회복되면서 그해 세계 경제는 (예상에 비해) 0.1%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습니다. 상대적으로 영향이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스 때는 중국이 구매력 기준으로 세계총생산(GDP)의 4%였지만 지금은 18%입니다. 이 때문에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예단하긴 어렵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경기 둔화를 막기 위해 정부와 중앙은행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중국 정부는 경기 부양 여력이 많습니다. 지금은 감염 확산을 막고 이와 관련한 보건 지출을 늘리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사스 때와 비교해 확산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적극적인 역할을 할 때는 아직 아닙니다.”
▷유행병이 세계적으로 확산하는데도 세계화가 여전히 바람직합니까.
“(2014년) 에볼라바이러스 위기 때도 그런 문제가 제기됐지만 성장과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선 경제적 통합의 이득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무역은 성장과 일자리에 좋고, 무엇보다 빈곤층에 좋습니다. 무역을 하면 가격이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수십억 명의 인구가 빈곤에서 벗어났습니다. 글로벌 경제에 참여해서였죠.”
▷지난해 세계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를 부양했지만, 앞으로도 통화정책이 계속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요.
“일부 국가는 금리 인하 여력이 없거나 매우 제한적인 게 사실입니다. 이미 마이너스 금리인 곳에선 추가 금리 인하가 쉽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통화정책이 우리가 의지해야 하는 유일한 수단일 순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정부가 쓸 수 있는 도구상자엔 두 가지 도구가 있는데 (통화정책 외에) 다른 하나가 재정정책입니다. 재정 여력이 부족한 국가는 재정지출의 질과 효과를 높이는 게 중요합니다. 경쟁력을 높이고 생산성을 강화하기 위해선 구조개혁을 해야 합니다.”
▷구조개혁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매우 광범위합니다. 예컨대 기술 발전에 뒤처지지 않도록 노동자들의 기술력을 높이는 등 인적 자본 투자를 늘린다면 좋은 투자이자, 성장에도 유리합니다. 민간 부문이 사람에 더 투자할 수 있도록 인적 자본 투자에 인센티브를 줄 필요가 있습니다. 경쟁을 막는 장애물을 없애고 레드테이프(규제)를 줄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경제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염두에 둘 건 사람들이 구조개혁에 대해 걱정하면 그걸 지지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성장의 과실이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는 ‘공정한 성장’이 필요합니다.”
▷미·중 무역갈등은 어떻게 보는지요.
“지난해 10월 세계 경제 전망 땐 미·중 무역갈등이 2020년에 글로벌 총생산을 0.8%포인트 깎아먹을 것으로 계산했습니다. 그런데 0.8%포인트 중 관세로 인한 감소분은 0.3%포인트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 0.5%포인트는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미·중 1단계 합의는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줄였지만 완전히 제거하진 못했습니다. 세계 경제가 여전히 (부정적) 영향을 받는 상황입니다. 미·중 2단계 협상이 빠르게 진전되는 것이 미국과 중국, 그리고 세계 경제에 모두 유리합니다.”
▷1월 31일 브렉시트가 확정됐습니다.
“브렉시트가 확정되면서 세계 경제의 위험이 다소 줄긴 했지만 불확실성이 모두 제거된 건 아닙니다. 브렉시트는 시작 단계일 뿐입니다. 우리는 아직 영국과 유럽연합(EU)의 협상이 어떻게 이뤄질지, 어떻게 타결될지 알지 못합니다. ‘무질서한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영국과 EU 경제도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한국은 지난해 2.0% 성장에 그쳐 잠재성장률(경제협력개발기구 추산 2.5%)에도 못 미쳤습니다. 정부는 뭘 해야 할까요.
“한국은 올해 2.2%, 내년에 2.7% 성장할 것으로 IMF는 보고 있습니다. 내년이 돼야 2018년 수준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보다 높진 않고 말입니다. 한국은 재정을 통한 경기 부양이 필요하고 그럴 만한 재정 여력이 있는 나라입니다. 통화정책을 추가로 완화할 여력도 있습니다. (글로벌 불확실성으로) 성장이 외부 환경에서 나오기 어렵고 안에서 성장을 끌어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병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IMF가 인도의 성장률 전망을 대폭 낮췄는데, 인도 경제가 불황에 빠질 것으로 봅니까.
“전혀 아닙니다. 하지만 심각한 경기 하강을 겪는 건 사실입니다. IMF는 인도의 지난해 성장률 추정치를 6.1%에서 4.8%로 낮췄고 올해 전망도 7.0%에서 5.8%로 내렸습니다.”
▷일본은행과 유럽중앙은행(ECB), 중국 인민은행 등이 디지털통화를 검토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중앙은행 외에 민간에서도 디지털통화를 검토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디지털통화로 옮겨가는 것엔 이익과 위험 요인이 다 있습니다. (금융소비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각종 서비스 비용을 낮출 수 있는 건 장점입니다. 반면 사이버 해킹문제와 (금융시장) 변동성이 큰 환경에서 디지털통화가 지금 통화를 대체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불확실성은 위험 요인입니다. 하지만 기술이 있다면 그 기술을 현명하게, 잘 사용하는 게 더 좋습니다. IMF도 디지털통화에 필요한 규제가 뭔지, 법적으로 필요한 게 뭔지, 어떻게 하면 위험을 최소화할지를 다른 기관과 협조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 불가리아 경제학자…IMF 75년 역사상 첫 동유럽 출신 수장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66)는 IMF 75년 역사상 첫 동유럽 출신 수장이다. 그간 금융 관련 국제기구 중 세계은행은 미국 출신이, IMF는 서유럽 출신이 총재를 맡아왔다. 여성으로는 바로 직전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현 유럽중앙은행 총재)에 이어 두 번째 수장이다. 불가리아 출생 여성 경제학자로 영국 런던정치경제대(LSE)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연구했고 이 과정에서 미시경제학 교과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1993년 세계은행 유럽·중앙아시아 환경 이코노미스트, 유럽연합(EU) 집행위원, EU 집행위 부위원장을 지냈다. 2016년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후임 사무총장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1953년 불가리아 소피아 출생
△불가리아 국가세계경제대 경제학 박사
△유럽연합(EU) 예산·인적자원 담당 집행위원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세계은행 최고경영자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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