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신황화론' 유감

입력 2020-02-03 18:42   수정 2020-02-04 00:28

유럽인들이 아시아를 두려워하게 된 역사는 뿌리가 깊다. 5세기 게르만족 대이동을 유발한 훈족, 13세기 동유럽까지 휩쓴 몽골, 15세기 비잔티움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튀르크…. 동방의 강력한 유목민족이 서진(西進)해 올 때마다 사분오열된 유럽은 벌벌 떨었다.

하지만 어느 일방의 우열은 아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인도까지 정복했고, 로마제국은 오리엔트를 지배했으며, 근대 유럽은 강성했던 오스만튀르크를 굴복시켰다. 19세기 서구 열강들은 문명세계의 8할을 식민지로 삼았다.

그런 점에서 19세기 말 독일에서 등장한 ‘황화론(黃禍論·yellow peril)’은 외견상 인종 배척이지만 실상은 당시 국제 정세의 산물이다. 독일 황제 빌헬름2세는 러시아의 극동 진출을 부추겨 아시아를 선점한 영국 및 신흥강국 일본과 대립케 했다. 이로써 중국을 갈라먹는 데 끼고, 러시아의 위협을 줄일 목적이었다. 그런 전략이 노골화한 게 1895년 청일전쟁 직후 일본에 압력을 가한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3국 간섭이다.

20세기 들어 2차 세계대전을 겪은 것도 한몫했지만, 패전국 일본이 급부상해 1980년대 미국을 삼킬 듯한 기세를 보이자 경제 측면에서 황화론이 되살아났다. 구미 5개국이 인위적인 달러 약세와 엔고(高)라는 강력한 견제조치(1985년 플라자합의)로 급제동을 건 배경이다.

2000년대 중국이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면서 황화론은 ‘중국 공포증(sinophobia)’으로 바뀌었다. 14억 거대 인구와 고도성장을 토대로 미래산업에서 미국을 바짝 쫓고 있어서다. 중국은 그러나 커진 덩치에 비해 불투명한 사회시스템, 경제·군사적 완력 자랑 등으로 국제사회 신뢰가 높지 못한 편이다.

최근 중국발(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이 퍼지면서 중국 혐오론이 일고 있다. 서구사회에서 중국인 배격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함께 앉고, 생활하고, 대화하는 것 자체를 기피하는 식이다. 중국인뿐 아니라 아시아인이면 다 물러가라는 식의 갈등마저 나타나 더 문제다.

하지만 전염병이 중국에서만 발병한 건 아니다. 메르스는 사우디아라비아, 에볼라는 콩고였고, 스페인독감은 미국이었다. 하루에도 수백만, 수천만 명이 오고가는 지구촌 시대다. 어떤 연유든 인종 갈등으로 번지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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