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나의 베토벤

입력 2020-02-03 17:58   수정 2020-02-04 00:03

올해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인 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음악계가 위대한 작곡가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나와 베토벤의 관계는 어쩌면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나의 데뷔 연주를 시작으로 50여 년 연주자로 활동하는 동안 중요한 연주 때마다 만났던 작곡가가 베토벤이기 때문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거의 모든 연주자가 베토벤과 특별한 사연이 있을 정도로 그의 음악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연주자 입장에서 보면 그의 음악은 한마디로 골칫덩어리다. 그의 작품은 수많은 작은 입자가 모여 생긴 거대한 건축물이다. 그 많은 작은 입자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건축물은 무너지고 만다. 그만큼 연주하기 어려운 작곡가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대부분의 국제콩쿠르 과제 곡에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심지어 국내 대학입시 곡으로도 가장 사랑받고 있다.

그의 곡을 연습하다가 난해한 부분에 봉착하게 될 때 다른 작곡가의 경우에는 작곡가 탓을 하기도 하지만 베토벤의 경우는 다들 약속이나 한 듯 ‘내 탓’을 하고 만다. 이렇게 베토벤은 연주자들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신적 존재이며, 그의 악보는 모든 진리와 율법이 담긴 ‘음악경전’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연주자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베토벤을 이처럼 특별하게 만드는 걸까. 그의 음악에는 다른 작곡가와는 차원이 다른 삶에 대한 불굴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 사실 그에게는 고질적인 귓병이 있었고, 1800년께 완전히 귀머거리가 됐다. 1802년 그는 좌절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결심하고 동생에게 남길 유서를 쓰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다.

그런데 이 유서를 읽다 보면 베토벤은 고통과 슬픔에 사무치다가도 결국 스스로를 위로하고 역경을 이겨낼 것이라고 암시한다. 유서가 아니라 선언문이 돼버린 것이다. 베토벤은 자살하지 않았고 들리지 않는 귀로 자기와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창작을 계속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절망을 긍정의 힘으로 전환시키고 세상을 떠나고 싶은 힘든 이들에게 다시 삶에 도전하라는 강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누군가가 목동이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때 나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이런 일들이 나를 절망에 빠뜨리고 자살을 생각하게 하지만 이때까지 나를 지켜준 것은 오직 예술이었다. 아, 내 안에 느끼는 모든 것을 꺼내놓을 때까지는 세상을 떠날 수 없을 것 같다.”(하일리겐슈타트 유서 중). 올해도 나는 베토벤과의 특별한 만남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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