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성장률 하락세를 더 유념해야 한다

입력 2020-02-04 18:09   수정 2020-02-05 00:12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이 중국을 강타하고, 세계 각국으로 번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반적인 경제성장률 하락이 예상될 뿐 아니라 금융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잠잠하던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200원대 가까이 상승하면서 환율 급등과 자본 유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환율 변동성이 커질 때마다 이전에 경험했던 급격한 자본 유출과 금융 불안, 외환위기가 또다시 오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현재 한국의 외환위기에 대한 준비 상황을 보면 1997년 외환위기 때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나은 수준이다. 위기 시 항상 문제가 됐던 달러 유동성과 관련한 준비 현황을 보면 외환보유액은 4000억달러를 넘어섰고, 외환보유액 수준을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단기외채 대비 기준, 3개월치 수입 대비 기준,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가 제시한 복합 기준 등에 따르면 대체로 적정 기준을 충족하는 상태다. 또 스위스, 캐나다 등과의 통화 스와프, 경상수지의 지속적인 흑자도 추가적인 달러 공급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 유입이 지속되는 추세인데, 은행 차입과 단기외채 비중은 커지지 않았다. 은행 차입, 특히 은행의 달러화 차입은 이전 위기 시 은행이 채무를 변제하지 못해 파산으로 이어지면서 금융위기가 동시에 발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 차입은 늘어나지 않았고 주식, 채권 등 포트폴리오 유입이 증가했다. 물론 주식, 채권 등의 급격한 유출도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할 수 있지만 은행 차입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할 가능성이 높다. 또 평소에는 별문제 없이 연장되지만 위기 땐 연장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큰 차입, 채권 중 단기 비중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줄어든 상태다.

한국의 전체적인 대외 금융자산 거래를 보면,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이 소유한 대외 금융자산은 외국이 소유한 한국 금융자산을 초과한다. 즉 한국과 외국이 서로 금융자산 소유분을 모두 정리하면 한국이 받을 게 더 많다는 의미다. 한국의 개별 경제주체도 전부 그렇다고 할 순 없지만, 경제 전체적으로 자산이 부채보다 많다는 것은 중요한 펀더멘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외 금융자산 중 외화 비중은 대외 금융부채 중 외화 비중보다 훨씬 큰 상태로, 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외화 자산을 일부만 정리해도 외화 부채를 갚을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약간 걱정스러운 점은 부문별로 보면 비금융기업 부문의 경우 대외 자산보다 대외 부채가 월등히 많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외환위기가 발생할 만큼 심각하지 않더라도, 이미 유입된 자본은 언제든지 다시 나갈 수 있고, 유입된 자본의 양이 상당해 급격히 빠져나가면 한국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선 항상 유의해야 한다. 다른 국가에서 발생한 외환위기가 전염될 우려도 있고, 위기가 전적으로 전염되지 않더라도 무역 경로 등을 통해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또 외환위기는 예상치 못한 경로를 통해 발생할 수 있어서 우리가 준비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인지하고 항상 국제 자본의 흐름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점 중 하나는 경제성장률 하락이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지지부진한 상태인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과 또 다른 이유들로 성장률이 더 낮아지게 되면 자본 유출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특히 유념해야 한다. 한국의 성장률이 급격히 낮아지면 해외 투자자들로서는 성장하지도 않고, 이윤도 많이 발생하지 않는 한국 경제에 투자할 유인이 없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투자한 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커진다. 기존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제성장률과 자본 유출입은 상당히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더 낮아지면 한국이 지난 위기를 놀라운 힘으로 극복한 뒤 그동안 전력을 다해 준비해온 외환위기 대비체제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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