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중국인 손님이 예약했습니까…”
일본의 주요 온천 료칸들이 ‘중국인 손님 유무’를 확인하는 전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인 투숙객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는 일본인 대부분이 조용히 예약을 취소한다고 합니다. 온천 관광지 료칸들로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일본에서도 중국인 혐오(시노 포비아)가 점점 더 수면 위로 올라오는 분위기입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도치기현 나스시오바라에 있는 상당 수 온천 숙박시설에서 1월 하순 이후 온천 예약객들로부터 중국인의 예약 유무를 묻는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인 예약이 있을 경우, 기존 숙박 예약을 취소하는 일본인이 적지 않다는 소식입니다. “고객님과 같은 날 홍콩 쪽에서 예약이 있습니다”라고 응답을 했더니 문의했던 일본인들이 모두 예약을 취소한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현재 중국인 예약이 없더라도 관련법상 ‘중국인이 예약을 신청하면 받을 수밖에 없다’고 료칸 측이 응답하면 통화를 마친 뒤 인터넷으로 예약을 취소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료칸 등 숙박 업계로선 우한 폐렴 확산으로 인한 일본인 내수 관광 위축이 더 심각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또 나스시오바라 지역은 대만 관광객 비중이 꽤 높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중국 본토 관광객으로 오인될 우려 탓에 대만인 관광객도 줄어들 것으로 보여 지역 관광업계의 주름살이 깊어졌습니다. 신문에 따르면 한 료칸 관계자는 “나스시오바라는 중국인 관광객이 적은 지역이어서 우한 폐렴 영향이 적다고 생각했는데 손님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예상 밖”이라며 곤혹스러워 했습니다.
이에 료칸들은 종업원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숙박객에게도 알코올 소독이나 마스크 착용을 권유하는 등의 대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전염병에 대한 공포를 근본적으로 치유할 방책이 아니어서 고심만 거듭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중국인에 대한 혐오와 기피는 이번 우한 폐렴 사태를 통해 세계 각국으로 빠르게 번지는 모습입니다. 한국과 일본, 홍콩, 베트남의 일부 식당과 상점에는 ‘중국인 거부’ 푯말이 붙었고, 한국과 일본에선 온라인 뉴스 댓글이나 트위터 등 SNS를 통해 혐중 메시지가 늘고 있습니다. 중국인에게 ‘바이오 테러리스트’라고 극단적으로 비난하는 사례까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주요 호텔 앞에서 ‘중국인 퇴거’를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했고, 호주 시드니의 한 카페에선 “우한 폐렴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메이드 인 차이나(중국산)’이니까요”라는 문구를 게시해 사회문제화하기도 했습니다. 유럽에서도 프랑스 언론이 ‘황색 경보’라는 인종차별적 헤드라인 기사를 내보내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폼페이 등 주요 관광지에서 입장 거부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헝가리에선 베트남인 상점 주인이 ‘나는 중국인이 아니다’는 문구를 쇼윈도에 내거는 촌극까지 빚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우한 폐렴이 인종주의적 공포에 불을 붙였다는 외신의 지적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가 기존의 중국에 대한 반감과 결합해 중국인에 대한 혐오 표출이 각국에서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편인 일본에서도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중국인 기피현상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치명적인 전염병의 위협은 사회 곳곳에 큰 영향을 미치는 모습입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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