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을 좋아한다. 시계 수리공이었던 선친의 어깨너머를 훔쳐보던 어린 시절부터다. 1963년 모나미에서 볼펜을 출시했지만 아버지는 만년필을 고집했다. 정교한 부품과 공구들에 익숙했기에 웬만한 개조나 수리쯤은 문제되지 않았다. 팁을 갈아 필기감을 개선하고, 슬릿을 조정해 잉크의 흐름을 제어했다. 지금이야 슬쩍 겨뤄 보고도 싶지만 당시로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경지였다. 일상이 물러난 늦은 밤, 오랜 세월 손에 익은 만년필을 꺼내 아껴 읽는 책 몇 장을 꼼꼼히 적어 내려간다. 하얀 여백과 부드러운 펜촉이 헤어질 듯 만나며 이어져 흐른다. 온전히 홀로 남은, 나만의 시간이다.
산업혁명과 시민혁명,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근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물꼬로 명명한 이중혁명은 조화롭게 발전하지 못했다. 과학기술의 성취는 무한한 위력을 자랑하지만, 사회의 갈등과 정치의 무기력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상전벽해를 이룬 경제적 풍요의 뒤편에서 양극화와 불평등, 불공정의 질곡은 더 무거워졌다. 디지털의 속도에 밀려 강퍅해진 내면이 온라인의 익명성 속에서 소진되고 있다. 삶을 지켜내지 못하는 혁신에 무슨 가치가 있을까. 혼돈의 시대, 길을 찾아야 한다.
사람은 다양한 관계 속에서 수많은 삶의 양태를 형성한다. 어떤 관계인가에 따라 개인과 공동체의 운명은 크게 달라진다. 세상의 근본 원리는 관계 자체이며, 개별 구성원의 강건함은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핵심 조건이다. 스스로 바로 서지 못하면 밖을 향하는 창은 열리지 않는다.
혼돈을 버텨낼 내면의 성숙은 스스로를 먼저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나온다. 잃어버린 자신과의 대화를 서둘러야 한다. 조금은 느려도 좋았던 아날로그의 촉감은 자신을 돌아보는 하나의 방편이다. 혼자만의 시간, 자기만의 사소함에 집중해 보자. 침잠할 수 있다면 작은 추억이든 물건이든 상관없다. 잠깐이나마 시끌벅적한 세상과 거리를 두는 습관은 오히려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
넉넉지 못했던 젊은 날엔 남대문시장에 들러 중고 만년필을 구경하곤 했다. 어느 날엔가 단골 가게에서 익숙한 모양의 중고 만년필을 만났다. 선친의 유품이라며 한 청년이 내놓았다고 주인은 말했다. 순간 어린 시절 작업대 너머 백열등에 비친 젊은 아버지의 옆모습이 짧게 스치는데, 손때 묻은 만년필이 셔츠 주머니에 무늬처럼 매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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