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국내 자동차 부품 생태계 생존을 위해 곳간을 열었다.
현대차그룹은 중소 부품 협력사를 대상으로 1조원 규모 자금 지원에 나선다고 6일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자금 지원 효과가 5000곳 이상의 2·3차 협력사까지 닿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중국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사태로 부품 조달이 끊긴 현대차 공장이 가동을 멈췄다. 현대차의 휴업은 11일까지로 예정됐지만, 부품 공급이 정상화되기 전까지는 지속적인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
현대차 공장이 멈추자 현대차에 부품을 공급하던 협력사들의 경영 환경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현대차 공장이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못하면 협력사 공장도 멈춰야 하는 탓이다. 이번 우한 폐렴 사태가 장기화되면 자금 여력이 충분치 않은 중소 협력사들의 줄도산마저 우려된다.
◇협력사 5000곳·50만명 지원이 목표
현대차그룹 1차 협력사는 약 350여곳 수준이지만, 1차 협력사에 부품을 공급하는 2·3차 협력사는 약 5000곳에 달한다. 근로자 수를 따지면 50만명 정도다. 대다수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직간접적으로 현대차그룹에 부품을 공급하며 다른 완성차 제조사 납품을 겸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국내 중소 부품 협력사들의 경영 어려움 해소와 국내 자동차 산업 생태계 전반의 안정화를 위해 1조원 규모 자금 지원을 직접 지시했다. 정 부회장은 "우리도 힘들지만 협력사들은 생사의 기로에 내몰릴 수 있다"며 "어려울 때일수록 힘을 모아 함께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3080억원 규모 경영 자금을 중소 부품 협력사에 무이자로 지원하기로 했다. 납품대금 5870억원과 부품 양산 투자비 1050억원도 조기 지급해 총 1조원 규모 자금을 투입한다.
직접적인 지원 대상은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현대트랜시스에 부품을 공급하는 350여개 1차 중소협력사다. 2월 중순 결제되는 금액을 이번주 지급하기로 했으며, 3월 중순 결제 예정인 납품대금은 2월말 지급한다. 예정일보다 최대 15일 이상 이른 시기에 대금을 지급해 협력사들의 자금 운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부품 양산 투자비도 기존 일정보다 조기에 지급하기로 했다.
3080억원 규모의 자금도 이달 중순부터 무이자로 지급해 협력사들이 경영 자금으로 활용하도록 한다. 현대차그룹은 지원을 받은 1차 협력사들이 납품대금을 조기 지급하도록 유도해 이번 자금 지원이 2·3차 협력사로도 이어지게 만든다는 방침이다.
중소 부품 협력사들은 금융권의 까다로운 대출 심사와 높은 금리로 인해 필요한 시기 원활한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긴급 지원이 중소 협력사들의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와 협력사 중국공장 재가동 협력
현대차와 기아차는 중국 부품 협력사 방역 강화 등 안전 확보를 위해서도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국내 공급이 중단된 와이어링 하니스 중국 생산 공장에도 철저한 방역 시스템을 갖추도록 지원하고 있다. 작업장 내 소독은 물론 열화상 카메라 설치, 마스크 등 개별 공급, 체온기 및 세정제 작업장 비치, 전 작업자 하루 2회 체온 측정 등 사업장 방역 및 직원 안전을 위한 조치에 나섰다.
이와 함께 와이어링 하니스 중국 협력사의 생산 재개를 위한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1일 산업부, 외교부와 협력해 와이어링 하니스 생산 핵심 거점인 산둥성에 협조 공문을 보냈다. 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점을 감안해 일부 공장이라도 엄격한 방역 관리 하에 생산이 가능할 수 있도록 승인해 달라는 내용이다. 현대차그룹중국(HMGC) 임원들도 산둥성 정부 관계자들과 직접 연락해 생산 재개 방안을 협의했다.
산업부와 외교부도 팔을 걷어부쳤다. 중국 칭다오 총영사관은 산둥성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공장 조기 가동 필요성을 설명하고 주한 중국 대사관 상무관, 산둥성 한국대표부 통해 산둥성 내 와이어링 하니스 공장이 위치한 시(市)정부들과 공장 재개를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는 협력사들과 함께 중국 외 지역 와이어링 하니스 생산 확대도 추진 중이다. 국내와 동남아시아에서 부품 조달을 확대하고, 중국 생산 재개 시 부품 조달에 소요되는 기간을 최대한 단축시키기로 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불가항력적 상황이지만 정부와 기업이 함께 어려움 타개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이번 긴급 자금 지원이 중소 부품 협력사들의 경영 안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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