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공연예술 파이어니어]발레 안무가 강효형 "안무란 음악에 무언가를 입히는 것"

입력 2020-02-09 14:19   수정 2020-02-09 14:21

"음악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었어요. 평소에도 이 음악엔 어떤 동작이 어울릴까 상상하는 걸 좋아합니다. 안무 작업을 할 때도 음악을 고르는 데 시간이 가장 많이 걸려요."
'예민한 귀'가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강효형(32)을 안무가의 길로 이끌었다. 요즘 그는 다음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오르는 '백조의 호수'(3월20~22일)와 창작발레 '호이 랑'(3월27~29일)을 함께 연습하고 있다. '백조의 호수'에서는 무용수로 무대에 오르고, '호이 랑'에서는 안무가로 무대 밖에서 작품을 이끈다.

서울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강효형은 2009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솔리스트로 활약해온 그는 2015년 국립발레단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KNB 무브먼트'를 통해 숨은 안무 역량을 드러내 보였다. 강효형의 소품 안무작 '요동치다'는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이 작품으로 2017년 러시아 무용 시상식 '브누아 드 라 당스' 안무가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강효형은 그해 초연한 국립발레단의 '허난설헌-수월경화'를 통해 안무가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허난설헌'은 2009년 '왕자 호동'에 이어 국립발레단이 두번째로 내놓은 한국적인 소재의 전막 발레였다.



'한 시간' '중극장' '한국적'이란 세 가지 조건으로 자신의 첫 전막 발레를 준비했다. 강효형은 "세트와 조명 의상, 연출까지 모두 책임져야 했기에 부담이 컸지만 그만큼 나만의 색깔을 입힐 수 있었다"며 "55분짜리 2막 발레로, 짧지만 안무가 복잡해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한국적인 요소를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세련되게 녹여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허난설헌'엔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춘설' '침향무' '하마단'을 비롯해 김준영의 거문고, 심영섭의 가야금 선율이 흘렀다. 그는 "황병기 선생님의 음악이 좋아 안무와 시너지가 돋보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그의 안무로 지난해 초연 무대를 가진 '호이 랑'은 처음부터 스토리라인이 명확했고 연출도 따로 있었다. 늙은 아버지를 대신해 남장을 하고 군에 들어가 반란군을 물리치고 공을 세우는 부랑의 이야기로, 대본은 한아름, 연출은 서재형이 맡았다. 이미지 중심이었던 전작과 달리 드라마가 이끌어가는 작품이어서 분위기가 달랐고 대극장에 공연시간도 85분 가량이어서 긴 호흡이 필요했다. 1막 마지막 전쟁 장면엔 홀스트의 '행성' 중 마스(전쟁의 신)를 배경으로 남성 무용수 24명의 군무도 펼쳐진다. 강효형은 "열린 자세로 서로의 아이디어를 조율해가는 과정을 통해 작품이 완성됐다"며 "이야기 전달이나 작품의 규모 측면에서 다른 종류의 의미있는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강효형이 정의하는 안무는 '음악에 뭔가를 입히는 것'이다. 영화를 보거나 거리를 걷거나 카페에서 얘기하다가도 귀에 꽂히는 음악이 있으면 휴대폰에 담아놓고 제목을 꼭 찾아본다. 음악부터 색달라야 독창적인 안무도 탄생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무용수로 무대에 오르면서 안무 작업을 병행한다는 것이 쉬운 길은 아니다. 강효형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열정이 없으면 정말 지치고 힘들 것"이라며 "에너지뿐 아니라 큰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지만 앞으로의 기회는 스스로 발굴하고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그가 시도해보고 싶은 작품은 다양하다. "'지킬앤하이드'를 발레로 한번 올려보고 싶어요. '겨울왕국' 같은 디즈니 작품들도 화려한 무대장치와 함께 뮤지컬 느낌이 나는 발레로 꾸며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체코 출신 안무가 이리 킬리안 같은 컨템포러리 작품도 완성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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