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급은 고사…차관급은 ‘험지’로
9일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은 최근 21대 총선에 불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민주당에 최종 전달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더 이상 설득하지 않고 본인 의사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강원 강릉 출신인 최 전 위원장은 보수 성향이 강해 여권에서 험지로 분류되는 고향 출마를 요청받았다.
총선을 두 달여 앞둔 현재까지 여권에서 공천을 확정 지은 경제 관료는 한 명도 없다. 기재부 출신인 김용진 전 2차관과 육동한 전 국무조정실 차장이 각각 경기 이천과 강원 춘천에서 험난한 당내 경선을 준비 중이다. 본선도 만만치 않다. 이천은 16대 총선부터, 춘천은 1988년 단일 지역구가 된 뒤 진보 진영이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지역이다. 기재부에서 예산 업무 등을 한 한명진 전 방위사업청 차장(1급)은 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에서 경선 경쟁자인 김승남 전 민주당 의원과 여론조사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 김경욱 전 국토교통부 2차관은 충북 충주에서 경선을 준비 중이다.
김 전 차관은 경선 승리 시 현역인 이종배 한국당 의원과 맞붙는다. 충주시는 민주당이 압승했던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한국당에 패했던 지역이다.
추가 영입도 물 건너간 분위기다. 민주당은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본인의 거부 의사가 완강하다. 김 전 부총리에게 충청권역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기려고 했던 민주당은 충북지역을 이광재 전 강원지사에게 맡기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구윤철 2차관은 각각 고향인 강원 춘천과 경북 성주 출마 요청을 받았지만 결국 거절했다.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 역시 전남 광양 출마를 요청받았지만 끝내 자리를 지켰다.
과거 영입 1순위였지만…
과거 경제 관료들은 ‘정무 감각과 정책 수립 능력을 갖춘 경제 전문가’라는 호평 속에 선거 때마다 여권의 인재영입 단골 후보에 올랐다. 20대 총선에선 기재부 1·2차관이 모두 자유한국당의 텃밭인 TK(대구·경북) 지역에 영입됐다. 1차관 출신인 추경호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을 물려받는 파격적 대우를 받아 낙승했다. 송언석 의원은 2018년 보궐선거에서 이철우 경북지사의 지역구였던 경북 김천에서 당선됐다. 17대엔 김진표 의원(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재정경제부 차관)이, 18대엔 김광림 한국당 의원(재정경제부 차관) 등이 국회에 입성했다. 이들은 이후 여당의 경제정책 수립을 주도했다.
정치권에선 이번 21대 총선에서 경제 관료들이 사라진 이유로 민주당 주류의 관료 불신을 들고 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작년 5월 당·정·청 회의에서 마이크가 켜진 걸 모르고 “관료가 말을 덜 듣는다. 자기들끼리 이상한 짓을 많이 해…”라고 말한 것이 공무원 사회에 대한 여권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실제 민주당이 발표한 19명의 총선용 인재영입 명단에 관료 출신은 전무하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당에서 영입 제안을 받고 출마 결심을 굳혔다가 이후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사례를 여럿 봤다”며 “평생 공무원을 한 사람들에겐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관료를 정책 수립에 활용하기보다는 ‘선거용 총알받이’로 쓰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공무원들이 출마를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다. 또 다른 경제부처 고위 관계자는 “2004년 노무현 정부 첫 총선에서도 장차관급 ‘늘공’(직업 공무원) 출마자 아홉 명 중 두 명만 당선됐다”며 “당시 여당의 요구를 받아 TK와 PK(부산·경남·울산)에 출마해 패배한 관료들을 챙겨주지 않아 모두 백수가 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청와대 출신 ‘어공’(어쩌다 공무원) 70여 명은 수도권 등 주요 지역에서 출마를 준비 중이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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