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귀’가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강효형(32)을 안무가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안무를 “음악에 뭔가를 입히는 것”으로 정의했다. 영화를 보거나 거리를 걷거나 카페에서 얘기하다가도 귀에 꽂히는 음악이 있으면 휴대폰에 담아놓고 제목을 꼭 찾아본다고 했다. 음악부터 색달라야 독창적인 안무가 탄생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강효형은 서울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2009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그가 안무 역량을 드러내 보인 것은 2015년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KNB 무브먼트’를 통해서다. 이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소품 안무작 ‘요동치다’가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으로 2017년 무용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 안무가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강효형이 안무가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킨 작품은 그해 국립발레단이 초연한 ‘허난설헌-수월경화’다. 그는 ‘한 시간 길이’ ‘중극장 무대’ ‘한국적 소재’란 세 가지 키워드만 받아들고 자신의 첫 전막 발레를 준비했다. “무엇보다 한국적인 요소를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세련되게 녹여내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세트와 조명, 의상, 연출 모두 책임져야 했기에 부담이 컸죠. 하지만 그만큼 나만의 색깔을 입힐 수 있었습니다.”
반면 지난해 초연한 ‘호이 랑’은 처음부터 스토리라인이 명확했고 연출도 따로 있었다. 늙은 아버지를 대신해 남장을 한 뒤 군에 들어가 반란군을 물리치고 공을 세우는 효녀 부랑의 이야기다. 이미지 중심이던 전작과 달리 드라마가 이끌어가는 작품으로 분위기가 달랐다. 대극장에 공연시간도 85분가량이어서 긴 호흡이 필요했다. 그는 “열린 자세로 서로의 아이디어를 조율해가는 과정을 통해 작품이 완성됐다”며 “이야기 전달과 작품 규모 측면에서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요즘 그는 국립발레단이 다음달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리는 ‘백조의 호수’(20~22일)와 ‘호이 랑’(27~29일)을 함께 연습하고 있다. ‘백조의 호수’에서는 무용수로 무대에 오르고, ‘호이 랑’에서는 안무가로 무대 밖에서 작품을 완성한다. 무용수로 무대에 오르면서 안무 작업을 병행한다는 것이 쉬운 길은 아니다. 강효형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열정이 없으면 지치고 힘들 것”이라며 “에너지뿐 아니라 큰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지만 앞으로의 기회는 스스로 발굴하고 만들어가야 한다”는 그가 시도해보고 싶은 작품은 다양하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발레로 한번 올려보고 싶어요. ‘겨울왕국’ 같은 디즈니 작품들도 화려한 무대장치와 함께 뮤지컬 느낌이 나는 발레로 꾸며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체코 출신 안무가 이리 킬리안의 작품 같은 컨템포러리 발레도 완성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윤정현/사진=김영우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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