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맞서 싸워야 할 리스크

입력 2020-02-09 17:23   수정 2020-02-10 00:02

얼마 전 제조업을 하는 지인이 금융계에 있는 내가 부럽다며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물건 하나 팔아봐야 얼마 안 남는데, 소위 돈놀이를 하는 금융업자들은 쉽게 돈을 버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분에게 “금융업이 쉽게 돈을 버는 것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물 밑에 있는 거대한 리스크에 대한 대가”라고 얘기했다.

1995년 2월 233년 역사의 영국계 금융회사 베어링은 네덜란드 ING그룹에 단돈 1파운드에 팔렸다. 베어링을 파산으로 내몬 것은 닉 리슨이라는 당시 20대 트레이더였다. 작은 실수를 덮으려다 부실이 갈수록 커져 파산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2013년 국내에서도 단 한 번의 주문 실수로 한맥투자증권이 파산했다. 리먼브러더스 붕괴로 시작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리스크의 종류로는 시장 리스크, 거래 상대방의 신용 리스크, 그리고 운영 리스크가 있다. 필자는 이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내부 통제제도 미흡이나 담당 직원의 실수 및 시스템 오류 등으로 인해 손실이 발생될 수 있는 ‘운영 리스크’라고 생각한다. 운영 리스크가 잘 관리되는 곳은 다른 리스크도 잘 관리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다. 규정과 감시만으로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흔히 ‘열 경찰이 한 도둑 못 잡는다’고 한다. 리스크 관리는 담당 부서만의 일이 아니라 전 직원의 일이라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누구든지 실수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배우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문화가 형성된다면, 서로 간에 격의 없이 질문하고 토론함으로써 실수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다. 설령 실수하더라도 작은 실수로 막을 수 있고, 비슷한 실수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

어떤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비슷한 행동을 아예 막는 것이 첫 번째 대응이다. 초기 대응으로 필요한 조치일 수 있다. 하지만 왜 사건·사고가 발생했고, 그런 것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교훈은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사건·사고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세상 모든 일에는 리스크가 있다. 따라서 리스크는 회피 대상이 아니라 관리 대상이다. 자동차 사고가 난다고 차를 못 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고 방지 기능을 강화한 자동차를 만들고, 사고가 예방되는 도로 시스템을 갖추고, 운전자가 교통규칙을 철저히 준수하도록 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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