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가 사랑했던 그 폰, 역사 속으로…블랙베리, 영욕의 21년史 마감

입력 2020-02-10 15:17   수정 2020-02-10 15:19


블랙베리 휴대폰이 추억 속으로 사라진다. 블랙베리는 ‘쿼티(qwerty)’ 키보드가 달린 제품으로 2000년대 중반 세계 시장을 주름잡았다. 한국에서도 ‘오바마폰’이라고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블랙베리는 지난 3일 공식 트위터를 통해 “TCL과의 파트너십 계약이 끝나는 올해 8월 31일 이후로는 더 이상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블랙베리는 2016년 스마트폰 자체 생산을 중단하고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TCL에 스마트폰 상표를 넘겼다. 올해 8월 TCL과의 계약 기간이 끝나면 21년을 이어온 블랙베리 휴대폰의 역사가 마감한다.

○이메일 기능과 보안성이 무기

블랙베리는 1984년 캐나다에서 설립된 회사 리서치인모션(RIM)이 만든 휴대폰 브랜드다. RIM은 2013년 사명을 아예 블랙베리로 변경했다.

블랙베리 브랜드가 붙은 제품이 처음 나온 건 1999년이다. 무선호출기(일명 삐삐)의 일종인 ‘블랙베리 850’을 출시했다. 메시지를 받을 수만 있었던 기존의 삐삐와 달리 메시지 전송이 가능했고, 이메일 기능도 들어간 혁신적 제품이었다. 블랙베리의 트레이드 마크인 화면 아래의 ‘쿼티 키보드’도 이 제품에 장착됐다. 키보드 모양이 검은나무딸기(블랙베리)와 닮았다고 해서 이와 같은 브랜드명이 탄생했다.

이후 RIM은 전화 기능까지 넣은 스마트폰의 원조 격인 휴대폰을 잇달아 출시했다. 고가였지만 이동 중에 이메일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과 데이터를 암호화해 별도 서버에 저장하는 강력한 보안성 덕분에 기업인들에게 불티나게 팔렸다. 지금의 카카오톡과 비슷한 블랙베리 자체의 메신저 기능도 인기 배경 중 하나였다. 블랙베리는 이후 일반인으로 판매처를 확대했다. 전성기였던 2008년엔 미국 휴대폰 시장 점유율이 44.5%에 달했다.

블랙베리는 한국에서 ‘오바마폰’으로 불렸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블랙베리 사랑’이 널리 알려지면서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9년 취임 당시 휴대폰을 계속 사용할지를 놓고 측근과 갈등을 빚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결국 취임한 뒤에도 계속 블랙베리 폰을 썼다. 취임 이후에도 휴대폰을 쓴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다. 블랙베리의 보안성을 입증한 사례로 회자된다.

○성공에 안주해 시장 변화 못 따라가

기세등등하던 블랙베리는 점차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자체 운영체제(OS)와 쿼티 키보드를 고집한 게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혁신을 요구하는 시장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애플은 2007년 아이폰을 출시했고, 구글은 2008년 안드로이드 OS를 무료로 배포했다. 이메일, 자체 메시지 기능은 더 이상 블랙베리만의 특별한 기능이 아니었다.

터치 스크린이 보편화되면서 블랙베리의 쿼티 키보드도 ‘애물단지’가 됐다. 아이폰 등 터치 스크린 위에 키보드를 입력하는 방식의 휴대폰은 큰 화면으로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블랙베리 휴대폰은 키보드가 전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화면이 여전히 작았다.

블랙베리는 자체 OS를 사용해 iOS와 안드로이드용 앱을 쓸 수 없었다. 한국에서도 ‘예쁜 쓰레기’라고 불리며 외면받았다. 디자인은 예쁘지만 대부분의 앱을 사용할 수 없어 기능이 부실하다는 평가였다.

실적 부진에 시달리던 블랙베리는 2013년부터 안드로이드 앱도 사용 가능한 OS를 출시했다. 하지만 시장 분위기를 바꾸지 못했다. 결국 2016년 개발과 생산, 마케팅 권한을 TCL에 넘겼다. 이후 TCL은 스마트폰 ‘키원’ ‘키투’ 등을 출시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마트폰 브랜드는 이처럼 완전히 몰락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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