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 ‘기생충’이 작품상으로 호명되자 영화를 만든 주역들이 모두 무대에 나와 기쁨을 나눴다. 제작자인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의 수상 소감이 끝나자 시상식에 참석한 영화인들은 일제히 의자를 두드리며 또 한 사람을 불러냈다. ‘기생충’의 책임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었다. 20여 년간 세계 영화계에서 활동하며 쌓아온 이 부회장의 폭넓은 인맥과 영향력을 실감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이 부회장은 영어로 말한 수상 소감에서 동생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언급했다. 그는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언제나 우리가 꿈꿀 수 있도록 해준 내 남동생에게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CJ, ‘살인의 추억’으로 봉 감독과 인연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는 1995년 3월 당시 이재현 제일제당 상무와 이미경 제일제당 이사가 미국으로 함께 건너가 애니메이션 제작사 드림웍스와 합작 투자 계약을 맺으며 시작된 CJ의 25년 문화사업이 ‘기생충’의 기적적인 오스카 제패로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CJ ENM은 2003년 ‘살인의 추억’을 시작으로 ‘마더’ ‘설국열차’ ‘기생충’까지 봉준호 감독의 영화 네 편을 투자·배급했다. CJ는 40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설국열차’의 글로벌 프로젝트에 과감히 투자하는 등 그동안 쌓아온 문화사업 노하우를 발휘해 봉 감독을 적극 지원해왔다. 봉 감독은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직후 CJ ENM에 감사를 나타내며 “우리 팀 경험이 향후 한국 영화에 어떤 형태로든 자양분이 되리라 믿고 잘 완주하겠다”고 말했다.
CJ는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직후인 1995년 문화사업에 처음 진출했다. 드림웍스 설립에 3억달러를 투자하며 첫걸음을 뗐다. 1998년 국내 첫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를 선보이며 국내 영화시장의 성장을 주도했다. 2000년에는 영화 배급 투자사인 CJ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배급 사업에 나섰다. 이후 미디어와 음악 제작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K컬처산업의 주역으로 거듭났다. 2009년부터는 국내 영화 배급사 중 유일하게 해외에 직접 배급하며 185편이 넘는 한국 영화를 소개했다. 최근엔 세계 영화시장의 중심지인 할리우드 진출에도 나서고 있다. 다른 한국 제작사들이 아직 판권 판매와 단순 자본 투자 수준에 그치는 반면 CJ ENM은 기획부터 제작까지 총괄하고 있다.
‘기생충’ 아카데미 캠페인 대대적 지원
이 과정에서 쌓은 경험과 네트워크를 ‘기생충’의 아카데미 캠페인에 적극 활용했다. 아카데미상은 8400여 명의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 투표로 결정된다. 수상하기 위해선 영화계 오피니언 리더인 AMPAS 회원들의 표심을 사로잡아야 한다. 미국 영화사들은 이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는데 ‘할리우드판 대선’이라 불릴 정도로 치열하다.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던 CJ ENM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윤인호 CJ ENM 영화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지난해 5월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직후부터 아카데미 캠페인 준비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북미 배급을 맡고 있는 네온이 북미 프로모션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며 북미 영화제 출품 등 실무를 맡았고, CJ는 예산 수립부터 개봉 현황 관리, 시사회 개최, 광고와 같은 현지 프로모션을 총괄했다. CJ가 이번 아카데미 캠페인 비용으로 들인 돈만 1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도 직접 지원 사격에 나섰다. 이 부회장은 ‘마더’가 칸 영화제에 초청됐을 때 직접 참석했으며, 지난해에도 ‘기생충’ 지원을 위해 10년 만에 칸 영화제를 다시 찾았다. 이어 골든글로브, 아카데미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 부회장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미국 영화계로부터 ‘기생충’의 호평을 이끌어내는 데 일조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