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9일(현지시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국제 장편 영화상, 감독상, 작품상을 휩쓸며 세계 영화사에 새로운 한 획을 그었다.
봉 감독의 '기생충'은 이날 최고상인 작품상을 비롯 최다 상을 수상하며 작품상과 감독상의 유력 경쟁 상대였던 '1917'을 꺾었다.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 '1917'은 음향효과상·촬영상·시각효과상 등 기술 부문 3관왕을 차지했다.
이날 각본상을 수상하며 처음 시상 무대에 오른 봉 감독은 "감사하다. 큰 영광이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봉 감독은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고독한 작업"이라며 "국가를 대표해 시나리오를 쓰는 건 아닌데, 그러나 한국에서는 처음 받았다. 감사하다"고 수상소감을 전해 박수를 받았다.
국제 장편 영화 부문 수상작으로 두번째로 시상대에 오른 봉 감독은 "이 카테고리 이름이 외국어에서 국제로 바뀌었다. 이름 바뀐 첫 번째 상을 받게 되어 기쁘다"며 "이름이 상징하는 바가 있는데 오스카가 추진하는 방향에 박수와 지지를 보낸다"고 밝혔다.
봉 감독은 아직 감독상과 작품상 시상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영어로 "오늘 밤 술 마실 준비가 됐다. 내일 아침까지(I am ready to drink tonight, until next morning)"라며 향후 수상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유머러스하게 수상소감을 전했다.
그러나 봉 감독은 감독상 수상자로 또 호명되자 "좀 전에 국제영화상 수상하면서 오늘 할 일은 이제 끝났구나 생각하고 릴렉스 하고 있었는데... 너무 감사하다"며 "그리고 어렸을 때 제가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는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고 말한 분이 있었는데, 마틴 스콜세지다. 함께 해서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관객은 봉 감독과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봉 감독은 끝으로 "같이 후보에 오른 토드 필립스('조커)나 샘 멘데스 등 다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감독님"이라며 "오스카에서 허락한다면 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잘라서 오등분해 나누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해 큰 웃음을 자아냈다.
3관왕의 기쁨에 얼떨떨해 하던 그때 아카데미 시상식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작품상의 수상자로 또 다시 '기생충'이 호명됐다.
봉 감독을 비롯한 배우들은 모두 무대에 올랐다.
'기생충' 제작사인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는 "시의적절한 역사가 쓰여진 것 같다. 아카데미 위원의 결정에 경의를 표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기생충'의 책임프로듀서(CP) 자격으로 무대에 오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은 "'기생충'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많은 분들이 저희의 꿈을 만들기 위해 지원해줬다"고 인사했다.
이어 "정말 정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한국 영화를 보러 와주신 관객들에게 감사하다는 것이다. 주저하지 않고 저희에게 의견을 얘기해주셨으면 좋겠다"면서 "그런 의견 덕에 저희가 안주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같은 의견 덕에 많은 감독과 창작자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감사하다"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영화 '기생충'이 상업영화의 상징 아카데미에서 의외의 선전을 한 배경으로는 자본주의의 모순과 양극화를 서양인들도 공감하게 만들었다는 강점이 꼽힌다.
중산층 중심의 자본주의가 깨지고 양극화에 따른 빈부격차는 세계 각국의 곪아터진 사회적 문제라 '기생충'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석권으로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 또한 후끈 달아오를 전망이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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