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19일에도 모든 승선 인원이 무사히 하선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배 안에 격리된 승선자 가운데 앞으로도 감염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 라이언 세계보건기구(WHO) 감염대책 책임자는 “새로운 감염자가 나올 때마다 그때부터 잠복 기간 격리가 다시 14일로 연장된다”며 격리 기간 장기화를 우려했다(아사히신문 2월 8일자 석간). 당장 발열 또는 기침 증상을 보인 이들 중 8일 3명, 9일 6명의 추가 감염자가 나왔다. 승선자들이 언제 모두 하선하게 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우한 폐렴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고민은 크다. 후베이성에서 귀국했거나 우한에서 온 관광객과 밀접 접촉한 사람 중 감염자는 26명인 데 비해 크루즈선 내 감염자는 거의 세 배인 70명이다. 일본 정부는 일단 선내 감염자를 일본 내 감염자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하고 ‘기타’로 분류해 따로 집계하고 있다. 그러나 선내 감염이든 그 외 감염이든 일본에서 격리돼 치료받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 감염자 수는 9일 현재 총 96명에 이른다. 기온이 높아지면 우한 폐렴도 소멸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그 여파가 올여름 도쿄올림픽에까지 미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표정이다.
크루즈선 내 환경도 피폐해지고 있다. 배 안 여행객들은 자신도 감염됐는지 아닌지 모른 채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본이 의료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우한 폐렴 감염 여부를 단시간에 가려낼 수 있는 키트(진단시약)는 아직 없다. 현재는 PCR검사라는, 시간도 비용도 많이 드는 방식으로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후생노동성 기준으론 후베이성 체재·방문 이력이 있는 자와 밀접 접촉자가 검사 대상이다. 이런 기준으로만 보면 일본의 선내 감염자 발생에 대한 대처는 상당히 수동적임을 알 수 있다.
융통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일본이어서 지금과 같은 수동적 대처 방식이 금세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요코하마항 정박 크루즈선 내 집단 감염을 일본에서 벌어진 ‘강 건너 불’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감염자가 발생했지만, ‘선내 대량 감염’이란 일본 내 만일의 사태에도 대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아직 준비되지 않은 신속 감염 진단키트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선내에는 56개 국적의 사람이 승선 중이다. 만약 한국산 진단키트가 제공돼 승선 여행객을 안심시킨다면 국제사회에서 한국 이미지는 크게 좋아질 것이다.
일본어에 ‘빌려줌과 빌림’을 뜻하는 ‘가시카리(貸し借り)’라는 말이 있다. 일상에선 ‘베풂과 신세 짐’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일본인은 자신이 신세를 졌다면, 즉 가리(借り)가 있다면 이를 갚아야 한다는 의식이 매우 강하다. 한국 내 방역에 매진하면서도 여객선 승선자들의 불안을 덜어주는 데 공헌한다면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한·일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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