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투자자 오랜 신뢰가 아마존 이어 테슬라도 키웠다

입력 2020-02-11 18:22   수정 2020-02-12 00:29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라의 주가 폭등에 세계가 깜짝 놀란 모습이다. 일부 자동차 제조 국가들은 공포를 내비치기도 했다. 테슬라의 성장 뒤에는 수익이 나지 않아도 끊임없이 신뢰하고 투자하는 미국 투자가와 시장이 존재한다. 미 정부의 정책도 한몫한다. 혁신과 자본과 정책이 삼박자를 맞춰 혁신 기업을 키우고 경제를 살리는 선순환의 생태계가 움직이고 있다. 기술 기업들의 성장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지금 미국 경제는 이들 혁신 기업을 중심으로 전례없는 골디락스(가장 이상적인 상태) 성장 시대를 맞고 있다. 2020년대에도 이들 기술 기업이 성장을 이끌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한국은 지금 어떤 좌표에 있는지 궁금하다.

테슬라의 주가 폭등을 바라보는 일본과 독일의 시선엔 긴장감이 가득하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사설에서 “테슬라 주가는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의 영향력을 보여준다”고 전제한 뒤 “2000년대 일본 전자산업이 인터넷기술 대응에서 뒤로 밀려 미국 하이테크 기업에 주도권을 내준 것을 기억한다면 일본 자동차 기업 리더들이 전자산업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끝까지 (사업을) 완수해내는 실행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일 슈피겔은 “폭스바겐 등 독일 자동차 기업이 빨리 디지털 그룹으로 변모하지 않으면 아이폰의 등장으로 살아남지 못한 노키아처럼 시장에서 사라질 위협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른 독일 언론도 대부분 주가 폭등을 두고 ‘미쳤다’며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기존 자동차산업 생태계를 뒤흔드는 괴물 테슬라의 도전에 이들 국가의 공포와 다급함이 엿보인다.

테슬라는 지난달 불과 한 달 사이에 주가가 두 배 넘게 뛰었다. 시가총액이 1500억달러를 넘어 자동차업계 시총 2위인 폭스바겐을 눌렀다. 지난해 37만7000대를 팔아 폭스바겐 판매대수의 4%밖에 되지 않는 기업이다. 그나마도 2018년엔 30만 대를 생산해내지 못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창업 이후 10년간 수익을 제대로 낸 적이 없는 기업이기도 하다. 이렇게 적자에 허덕이는 기업이지만 10년 동안 주가는 지속적으로 올랐다. ‘쪽박이냐 대박이냐’를 선택하도록 하는 이 기업에 돈이 끊임없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日·獨 테슬라에 공포감

투자자들이 눈여겨본 것은 테슬라의 수익성이 아니라 성장성이었다. 전기차 혁명을 선도한 기업으로 테슬라 전기차의 배터리 주행거리는 세계 최고다. 새로 나온 전기차 모델은 한 번 충전하면 600㎞까지 주행한다. 기존 자동차 기업의 전기차에 비해 주행거리가 월등하다. 그동안 테슬라의 골칫거리로 꼽혀 온 생산 문제도 중국 공장이 본격 가동하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전기차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10년 믿음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테슬라 못지않게 적자기업이면서 최근 주가가 급등한 기업은 전자상거래 업체 쇼피파이다. 이 기업은 아마존과 비슷한 쇼핑몰 플랫폼인데 아마존과 달리 고객들이 직접 기업 브랜드를 관리하고 데이터 처리도 담당한다. 시가총액은 현재 540억달러가량으로 5년간 계속 커졌다. 이 밖에 지난해 기업공개(IPO)를 한 우버와 리프트도 주식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을 높인 기업이다. 아직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주식 시장에선 인기를 끌고 있다.

'아마존 학습효과' 시장에 반영

시가총액 2위 기업 아마존의 학습효과가 시장에 투영되고 있는 모습이다. 1994년 창업한 아마존은 20년 가까이 제대로 이익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주가는 상승 곡선을 그렸고 기업가치는 올라갔다. 아마존이 IPO를 한 1997년 나스닥의 첫날 종가는 23.50달러였다. 현재 주가는 2133달러(10일 종가 기준)다. 무려 90배가 넘는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아마존이 투자자들에게 보여준 건 미래 성장성이었다. 투자자들도 아마존의 비전을 신뢰했다. 물론 아마존이 그냥 있었던 건 아니다. 끊임없이 기업을 인수했고, 새로운 성장전략 아이템을 발굴하고 연구개발(R&D)을 계속해 왔다. 지난해엔 하루 배송 서비스를 내세워 제품을 빠르게 전달하는 데 집중 투자했다. 소비자 주거지와 가까운 곳에 물류창고를 건설해 배송 시간을 크게 줄이는 전략도 먹혀들었다.

이처럼 창조적 파괴를 하는 기업에 가장 필요한 건 투자자들의 돈이다. 혁신과 금융자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시장의 신뢰가 우선이며 금융이 뒷받침돼야 한다. 실리콘밸리를 금융밸리로 부르는 것도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미국 자본 인프라가 이런 기업들을 키우고 있다. 미국의 기업 정책도 한몫한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대규모의 법인세 감세를 시행하면서 기업들에 힘을 실어줬다. 각종 규제를 제거해 신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생태계 발판을 마련했다.

미국 경제는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고용은 계속 늘어나고 실업은 줄어든다. 미국의 1월 신규 일자리는 22만5000개가 늘어났다. 전망치를 웃돈 수치다. 소비도 줄지 않는다. 지난해 12월의 개인소비는 0.3% 증가했다. 인플레이션도 목표치 2%를 넘지 않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현재의 미국 경제를 골디락스로 표현한다. FAANG(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넷플릭스 애플) 등으로 표현되는 기술주가 미국 경제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들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S&P500지수 기준 전체의 18%에 달한다. 2000년 5대 기업이 차지한 비중과 같다. 하지만 그때는 GE 인텔 엑슨모빌 등 제조업 기업 위주였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FAANG은 당시 기업들과 비교해볼 때 주당 순이익 대비 주가가 훨씬 낮다고 한다(지금 30배 대 당시 47배). 그리고 사업에 더 많은 자본을 재투자한다(48% 대 26%). 그만큼 이들이 성장할 여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코노미스트지는 분석했다.

이들의 활동으로 가장 두드러지게 효과가 난 대목은 낮은 인플레이션이다. 지금 미국에서 나타나는 저인플레이션 원인으로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셰일가스 효과 등 여러 가지를 찾을 수 있지만 학계가 주목하는 건 아마존 등의 온라인 유통 시장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아마존 등으로 인한 전자상거래 시장 확대가 온라인과 오프라인 업체 간 가격 경쟁력 차이를 심화시켰다. 아마존의 프라임 회원(약 1억5000만 명)은 미국 인구의 절반 남짓이다. 프라임 회원에겐 일반 오프라인 가격의 평균 5~10%를 인하해준다. 가격 인하가 물가상승률을 떨어뜨린다. 또한 기술 발전은 기술을 집약적으로 이용하는 제품의 가격을 낮추고, 전반적인 노동생산성 향상은 기업의 단위 노동 비용을 줄어들게 한다.

低인플레도 혁신에 따른 효과

기술주들이 계속 상승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10년간 기술기업들이 시장을 이끌고 경제를 이끌 것은 분명하다. 4차 산업혁명이 도입기가 지나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이 같은 혁신을 낳는 건 기업가이고 기업가 정신이다. 테슬라와 아마존의 뒤에는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이조스라는 광기에 가까운 천재가 있다. 이 둘 모두 우주선을 만들어 우주에 가겠다고 한다. 한국도 마냥 제도와 환경만 탓하고 있을 순 없다.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어떻게 보면 기업가 정신일지도 모른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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