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르제이의 스타일라이프⑥] 새벽시장을 누비는 아줌마 ‘유니콘 벨르제이’

입력 2020-02-13 17:02   수정 2020-02-17 10:02


“영원히 살 것처럼 일하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의 행복을 고민합니다”

SNS를 시작한지 벌써 6년이 다 되어 갑니다. 당시 4살이었던 아들의 성장 과정을 기록해 두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제일 컸어요. 일하는 엄마에게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의 ‘폭풍성장’은 아쉬움 그 자체거든요. 육아와 가족여행 등의 일상을 기록하며 SNS를 하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몇 달 뒤 20대 시절의 제 모습이 그리워졌습니다. 싸이월드를 하던 시절의 ‘여자 김혜정’을 되찾고 싶어진 거예요. 그렇게 마음에 불어온 작은 바람이 지금까지 이어졌네요. 그리고 지금은 의류를 제작하는 ‘유니콘 벨르제이’로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을 부쩍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제 삶의 변화를 이끌어 준 특별한 순간을 꼽으라면 의류 쇼핑몰 운영을 준비하며 ‘새벽시장’을 누비던 시절을 말하고 싶습니다. 오롯이 ‘좋아서’ 시작한 첫 번째 도전이었고 그만큼 열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친구와 작게 시작하는 사업이었던 만큼 직장을 그만둘 순 없었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투잡으로 쇼핑몰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히 퇴근 후에는 동대문에서 의류 바잉을 하고 새벽까지 사이트 관리와 상품배송을 하며 숨가쁜 매일을 살았습니다.

낮에는 직장인으로 밤이면 초보사업가로 정말 억척스럽게 일을 했어요. 몸은 힘들었지만 기분은 무척 좋았습니다. 매 순간이 보람됐고 진짜 살아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허약했던 제가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스스로도 신기할 정도였어요.

동대문 새벽시장의 분위기가 그랬던 것 같아요. ‘밤을 잊은 사람들’이라는 말을 하죠. 늦은 새벽인데도 불야성인 동대문을 누비는 순간은 피곤을 잊게 되더라고요.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제 심장을 뛰게 했어요. 덩달아 신이 나서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예쁘고 품질 좋은 옷을 찾아 다녔습니다.

시장에서 발품을 파는 시간이 늘수록 사업에 대한 자신감도 붙었고 소재나 박음질, 안감, 디테일 등 옷에 대한 지식도 많이 얻었습니다. ‘단순히 예쁜 옷’을 팔고자 했던 초심은 ‘품질 좋고 예쁜 옷’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 계기가 됐죠.

“성공은 영원하지 않고, 실패는 치명적이지 않습니다”

당시 준비한 쇼핑몰은 도전에서 그쳤지만 새벽시장에서 얻은 경험은 저에게 소중한 재산처럼 남았습니다. ‘일단 하면 된다’라는 믿음을 갖게 됐고 결혼 후에도 소소하게 ‘의류 판매’를 진행하는 계기가 됐으니까요. 올해 시작한 ‘유니콘 벨르제이’의 옷도 그렇고요.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저는 남들처럼 살기 위해 애썼습니다.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적당한 나이에 ‘결혼’하며 안정된 삶을 꾸리는 것이 행복의 전부라고 믿었어요. 그런데 30대 중반을 향할 무렵 반복되는 아줌마의 일상이 ‘무력함’으로 다가오더라고요. 편하고 안정적인 생활과 바쁘고 힘들지만 가슴 뛰는 도전 사이에서 갈등하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사람은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하잖아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꿈을 향해 ‘일단 시작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삶의 현장을 달립니다. 아직도 ‘예쁜 옷’이 좋아서 새벽시장을 누비는 아줌마 벨르제이였습니다.

패션&뷰티 크리에이터 김혜정 (벨르제이)

bnt뉴스 기사제보 fashion@bn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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