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태는 시진핑 체제가 꿈꿨던 중국몽(夢)이 얼마나 허망한 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인구 1100만 명의 대도시인 우한을 봉쇄하는 초유의 조치를 취하고도 바이러스 사망자는 계속 증가일로다.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 지방 도시의 열악한 의료 시설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감염자 치료에 필수인 음압 병동조차 없이 감염자들을 격리시키며,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식 사회주의의 결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도 이번 바이러스 사태는 중국에 치명적이다. 중국 정부는 전염병이 세계로 퍼지고 있음에도, 폐쇄적인 조치로 일관했다. SNS를 통한 자국 내 경고음까지 막았다. 경고의 신호를 소음으로 치부함으로써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게다가 스스로의 힘으로 전염병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자만을 보였다. 전 세계 구호 인력이나 의료 장비의 힘을 빌었더라면 사태 확산을 막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음에도 중국 정부는 스스로의 무력함을 감추려는 듯, 외부의 도움을 차단했다. 적어도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중국이 세계의 리더가 되기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세계 경제 지형도 코로나바이러스 전후로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에 의존하는 글로벌 제조업 공급망에 대한 의문이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확산으로 중국의 공장들이 문을 닫고, 칭따오 등 중국의 주요 무역항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게 되자, 그 영향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감산 조치에 들어간 게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차는 차량 핵심 부품인 와이어링 하네스 대부분을 중국에 있는 현대차 협력사에서 공급받고 있다.
공급망 사슬의 다변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베트남은 이번 바이러스 사태를 계기로 새로운 전환점에 서게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을 완전히 대체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국의 대안으로 고려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공조 설비를 생산하는 한 업체 대표는 “부품 30% 정도를 중국에서 가져와 베트남에서 조립하고 있다”며 “이번 바이러스 사태를 계기로 베트남 현지화율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들 중에선 최근 들어 한국에 있는 R&D(연구·개발) 인력과 시설을 하노이, 호찌민 등으로 옮기는 사례가 이미 나오고 있다.
베트남은 선진국들의 공급망 다변화 정책으로 몇 차례 혜택을 본 바 있다. 일본이 2011년 태국 홍수에 이어 2012년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이 불거지자 베트남으로 생산 시설을 분산시킨 게 대표적이다. 일본은 2012년에 한국을 제치고 베트남 제1 투자국에 올라설 정도로 공급망 다변화에 공을 들였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베트남이 ‘세계의 공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2018년 이후의 상황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베트남은 중국의 폐쇄성에 맞서 개방화 전략으로 글로벌 제조업체들을 끌어들였다. 베트남과 자유무역협정(FTA)를 맺은 국가만 60개국에 달한다. 2월12일(현지 시간)엔 유럽의회가 베트남과의 FTA를 비준했다.
자국 산업 보호에 관한 뚜렷한 대책 없이 FTA를 훈장처럼 맺고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은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앞으로 주목할 점은 베트남이 중국에 버금갈 만큼 제조업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느냐다. 이와 관련해,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는 최근 베트남 최대 투자 기업인 삼성전자에 자국 부품업체들의 글로벌 진출을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단기적으론 베트남 경제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베트남에 주어진 천재일우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부동산에 지나치게 편중된 국가의 부, 만연한 부정부패와 이로 인한 열악한 정부 재정, 뿌리 산업의 부재와 기업가정신의 실종, 이론에 치중해 있는 대학 교육, 정부 정책의 남발과 결단력의 부족 등 여러 가지 결함들을 극복하고 베트남이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동휘 하노이 특파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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