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국민의 일상생활까지 얼어붙게 하는 상황으로 번지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 경제에 미칠 충격파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일정 부분 타격이 불가피하겠지만,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의 경험에 비춰볼 때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이고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
정말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는 문제는 지난 30년간 한국 경제의 성장을 지배해 온 ‘불길한 법칙’이다. 필자가 몇 년 전 논문에서 보고한 ‘5년 1%포인트 하락의 법칙’이 그것이다. 한국 경제의 진짜 성장 능력을 보여주는 ‘장기성장률’이 이 법칙에 따라 1990년대 초 이후 5년마다 1%포인트씩 규칙적으로 하락해왔다. 감속도 없이 미끄럼 타듯이 추락하고 있다.
이 경험적 법칙은 어느 정권에 의해서도 깨지지 않았고,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차이가 없었다. 성장률 추이를 10년 이동평균으로 계산하는 장기성장률은 이전의 7%대에서 김영삼 정부 6%대, 김대중 정부 5%대로 떨어졌다. 이후 노무현 정부 4%대, 이명박 정부 3%대로 정확히 1%포인트씩 떨어졌다. 이 법칙이 한국 거시경제 운행을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작동해 온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경제정책도 이 경험적 법칙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해 수립됐어야 했다. 이 ‘뒷걸음의 법칙’을 어떻게 저지할 수 있을지에 집중했어야 했다는 뜻이다.
아니기를 바라지만, 이 법칙에 따르면 우리 경제의 장기성장률은 박근혜 정부에서 2%대를 지나 현재 1%대 중반(2020년 1.4%)을 통과 중일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현재 우리 경제의 진짜 성장 능력은 한국은행이나 정부가 생각하는 잠재성장률인 2%대 중후반보다 훨씬 낮은 수준일 개연성이 크다.
지난해 이전 4~5년간 한국 경제는 2%대 후반에서 3% 정도의 연간 성장률을 보였다. 그렇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가 주도한 이른바 ‘초이노믹스’로 대표되는 경기부양책 및 일시적 무역수지 흑자에 따른 착시효과를 제거하면 우리의 성장 능력은 그보다 훨씬 낮은 1%대 중반까지 이미 내려왔을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 정부 때는 0%대의 암울한 전망까지 가능하다.
세계적으로 보면 과거 6% 이상의 고도성장을 맛본 뒤 45년 이상 지속적 ‘성장 추락’을 경험한 나라가 6개국이 있다. 이 가운데 독일을 제외한 일본,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 등 다섯 나라의 장기성장률이 0%대, 심지어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추락했다. 한국은 ‘5년 1%포인트 하락의 법칙’에 따라 장기성장률이 이들 국가보다 훨씬 규칙적으로 하락해왔기 때문에, 혁명적 정책 변화 없이는 ‘제로(0%대) 성장’을 마주할 각오를 해야 한다.
만약 ‘제로 성장’이 현실화한다면 한국 경제는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위기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장기성장률이 2%대까지 하락하면서 조선, 해운 등 한계산업과 한계기업 증대, 일자리 부족과 청년실업 증가 등 많은 경제적 어려움이 이전 정부에서부터 현실화하고 있다. 이 퇴행의 법칙을 깨지 못한다면 일자리 실종과 실물위기는 물론 금융위기까지 수반되는 복합적 위기의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 성장률이 0%대까지 하락하는 건 결국 우리 경제의 좋은 일자리 창출 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제조업 부문 일자리의 새로운 공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청년 일자리 문제와 노인 일자리 문제가 동시에 더 악화될 수 있다.
결국 ‘5년 1%포인트 하락의 법칙’을 깰 수 있을지가 앞으로 한국 경제의 운명을 결정하는 화두가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5년 1%포인트 하락의 법칙’을 막아내는 것을 국가 정책의 지상명제로 삼아야 한다. 이 무서운 법칙을 막아내고 성장률 추락을 반전시키기 위해 과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 김세직 교수 약력
△서울대 경제학 학사·석사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
△1992~2006년 국제통화기금(IMF) 선임이코노미스트
△2006년~현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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