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투자환경 '외환위기급' 추락…"획기적 규제개혁으로 돌파해야"

입력 2020-02-16 17:09   수정 2020-02-17 01:00


2018년 하반기부터 투자 부진으로 경기가 하강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다. 대부분 공공부문 대책이었다. 작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8000억원 증액했고 공공기관 투자는 6조1000억원 늘렸다. 그 결과 지난해 정부 투자(총고정자본형성)는 11.1% 증가했다. 2009년(24.6%) 후 가장 큰 증가폭이다.

하지만 전체 투자 부진은 더 심해졌다. 총 투자 감소율이 2018년 2.4%에서 작년 3.5%로 더 커진 것. 민간 투자가 6.0% 하락한 게 결정적이었다. 민간 투자가 이보다 더 부진했던 시기를 찾으려면 외환위기 때인 1998년(-23.5%)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투자 환경이 외환위기급으로 안 좋다”는 산업 현장의 아우성이 통계로 입증된 것이다.


설비·건설투자 모두 최악 부진

최근 투자 부진은 설비, 건설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 2017년 16.5% 증가했던 설비투자는 2018년 -2.4%로 돌아서더니 작년엔 감소율이 8.1%까지 치솟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8.1%)과 같은 수준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경기가 아무리 어려워도 신제품 생산을 위한 투자는 웬만하면 줄이지 않는데, 최근엔 이런 투자마저 감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건설투자도 2018년(-4.3%)과 지난해(-3.3%) 2년 연속 감소했다. 정부의 SOC 예산은 늘었지만 민간 건설 경기 부진을 만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투자 부진은 지난해 경제성장률을 1.1%포인트 깎아내렸다. 한국이 지난해 10년 만에 최악의 경제성장률(2.0%)을 기록한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작년 세계 경기 침체가 심해져 투자 부진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투자 부진을 글로벌 경기 둔화만으로 설명하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를 뜻하는 ‘해외 직접투자’는 지난해에도 고공 행진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작년 1~3분기 해외 직접투자는 전년 동기보다 21.6% 증가했다. 투자 부진에는 정부 정책 등 국내 요인도 적지 않으며 특히 현 정부 출범 직후부터 계속된 친(親)노조 정책, 규제 강화·법인세율 인상 등 반(反)기업 정책이 국내 투자 수요를 해외로 내모는 데 일조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친노조 탈피하고 신산업 규제 풀어야”

민간 투자 부진이 심해지자 정부도 작년부터 변화를 꾀하긴 했다. 경제 현실을 왜곡한다는 비판이 많았던 ‘소득주도성장’ 대신 ‘혁신성장’을 강조한 게 대표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1월 기업인과의 대화를 시작으로 기업 기(氣) 살리기 행보에 수시로 나섰다.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아산공장과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를 잇따라 방문해 “혁신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고 격려했다. 현장 방문 직후 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선 “민간 투자 환경을 개선해 경제 활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거의 없었다. 투자세액공제 확대 등 일부 제도 개선은 있었지만 친노조 정책과 높은 인건비, 각종 규제 등 기업이 국내 투자를 꺼리는 근본 원인은 손대지 않았다. 대기업 지배구조 및 환경 관련 규제 등은 오히려 더 강화됐다. 지난 13일 문 대통령이 “과감한 세금 감면과 규제 특례를 시행할 테니 기업들은 정부를 믿고 계획했던 설비투자를 차질 없이 진행해달라”고 말했지만 이 역시 ‘희망고문’이 되리란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은 통제, 감시해야 할 대상이라고 여기는 정부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민간 투자와 경제 활력을 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신산업의 경우 미국과 중국처럼 일단 모두 허용한다는 식으로 규제를 획기적으로 푸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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