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한국 영화 리메이크 사업을 하는 김현우 크로스픽처스 대표는 지난 15일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한국 영화뿐 아니라 아시아 영화에 대한 수요가 세계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인도에서 디즈니가 ‘포레스트 검프’를 인도 버전으로 촬영 중이며 앞으로 이런 합작 프로젝트가 더 증가할 것이란 설명이다.
할리우드, 아시아 인재에게 눈 돌려
영화계에서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이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영화산업에 엄청난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은 “아시아의 재능 있는 영화인들이 아카데미를 겨냥한 작품을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하고, 할리우드는 아시아와 합작 및 협력을 늘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아카데미에서 아시아계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아카데미는 지난 10년간 ‘버드맨’ ‘레버넌트’의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그래비티’ ‘로마’의 알폰소 쿠아론, ‘셰이프 오브 워터’의 기예르모 델토로 등 멕시코 감독 3인방에게 감독상을 다섯 차례나 안겼다. 아시아계로는 대만 출신인 리안 감독이 두 차례 감독상을 받았지만, 수상작은 할리우드 자본과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영화였다.
반면 ‘기생충’은 순수 한국 자본과 시스템으로 제작한 비영어 영화인 만큼 아시아 영화인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는 분석이다. ‘1인치 자막 장벽’을 뚫을 수 있는 아카데미 수상 공식을 명확히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비결은 보편적인 주제를 재미있는 장르 영화로 제작했기 때문”이라며 “아시아 영화인들도 ‘기생충’을 벤치마킹해 자국의 보편적인 소재를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담아내는 데 뛰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생충’이 빈부 격차와 계층 갈등이란 시대적 고민을 다뤄 전 세계의 공감을 얻어냈듯이 아시아인의 시선으로 기후 재앙, 노동, 인종 등의 문제를 완성도 높게 그려낼 것이란 얘기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도 “서구보다 늦은 아시아의 민주화와 산업화 경험은 참신한 영화적 소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할리우드·아시아 협업 가속화할 듯
‘기생충’ 수상으로 시작된 할리우드와 아시아의 협업 및 합작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아시아의 대표 격인 한국 CJ ENM은 ‘극한직업’ ‘수상한 그녀’ ‘써니’ ‘숨바꼭질’ 등의 리메이크를 비롯한 10여 편의 합작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아시아 최대 시장인 중국과 할리우드의 합작은 초기 단계다. 중국 알리픽처스와 할리우드 앰브라인파트너스는 합작 협정을 체결하고 작품을 개발 중이다.
미국에서 18년간 독립영화를 만든 강영만 서울웹페스트 집행위원장은 “아이디어가 고갈된 할리우드가 아시아 국가들과 합작을 조금씩 늘리고 있다”며 “‘기생충’을 계기로 그 흐름이 더욱 가팔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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