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업계에서 사운드 엔지니어링을 담당하는 조 과장(33)은 자신이 일하고 있는 업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유탄’을 정통으로 맞아버렸다고 한탄했다. 업계 최고 성수기인 연말 분위기를 입학 시즌인 3월, 적어도 2월까지는 이어갈 심산이었는데 코로나19가 찬물을 끼얹었다는 얘기다. 조 과장은 “공연이 갑작스레 취소되면서 비용을 전액 환불해주다 보니 업계 손해가 상당하다”며 “코로나19가 입힌 경제적 타격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수준 이상”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코로나19가 한국 사회에 준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부품 조달 차질로 공장 가동을 멈췄고 한 홈쇼핑업체는 사내에서 확진자가 나오자 직장을 폐쇄했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기업들이 고강도 대책을 앞다퉈 내놓고 있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중국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혐오를 드러내는 등 우리 사회의 민낯도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한숨 쉬는 김과장 이대리들의 이야기를 모아봤다.
보여주기식 예방 대책은 이제 그만
중대형 제약회사에 다니는 전 대리(31)는 회사의 감염 예방 대책에 불만이 많다. 전 대리의 회사는 아침 출근길 로비에서 열화상카메라로 출근자 체온을 재고 비치된 손소독제를 쓰지 않으면 출입을 막을 만큼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전형적인 보여주기식이라는 지적이다. 전 대리는 “체온을 재는 것도 출퇴근 인원이 가장 많은 오전 7~8시에만 하고 이후엔 하는 둥 마는 둥”이라며 “정작 사내에선 마스크를 쓰는 임직원도 없기 때문에 주변에서 재채기 소리가 들리면 깜짝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회사 인사·총무부가 내놓은 대책이 사내 분위기를 감안하지 못해 대책이 헛바퀴만 돌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대형 백화점은 최근 중국 출장을 다녀왔거나 열이 나는 직원에게 14일간 무급 휴가를 가라는 방침을 내놨다. 하지만 무급 휴가를 신청한 직원이 아직까지 한 명도 없다. 이 백화점 본사에서 근무하는 김 주임(33)은 “유급이 아니라 무급인 데다 갑자기 몸이 안 좋다고 14일을 쉬겠다고 하면 팀내에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게 뻔한데 누가 휴가를 신청하겠냐”며 한숨을 쉬었다.
유통 대기업에 다니는 윤 과장(39)은 회사의 앞뒤가 안 맞는 조치로 곤란에 빠졌다. 인근 사업장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자 회사는 곧장 사내 어린이집을 휴원했다. 회사는 구청의 권고 때문이라며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윤 과장에게는 ‘육아 대란’이 닥쳤다. 그는 “어린이집이 쉬는데 직장은 정상출근”이라며 “결국 연차를 내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외부인 포비아’ 절정
사람을 만나는 게 일인 영업직인 김과장 이대리들의 애로사항도 만만치 않다. 증권사 영업직(RM) 직원들은 최근 업계에서 ‘불청객’으로 통한다. 업체와 미팅을 잡으려고 하면 전화나 콘퍼런스콜(다자간 전화 회의)로 대체하자는 얘기를 쉽게 듣는다. 서울 여의도 한 증권사에 RM으로 있는 오 과장(36)은 “지난달부터 현장영업은 사실상 포기했다”며 “이미 어느 정도 관계를 형성한 고객과도 최근엔 얼굴 보고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직원들이 직접 가정을 방문해야 하는 렌털업계도 고민이 많다. 직원에 대한 감염 우려는 물론 고객의 불안까지 감안해야 해서다. 한 렌털업체에는 지난달부터 방문 서비스 연기를 요청하는 고객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이 업체에서 일하는 이 과장(39)은 “차라리 고객이 먼저 방문을 연기해주면 다행”이라며 “약속 시간에 집을 찾아갔는데 문전박대를 당한 적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시작된 만큼 ‘중국 포비아’도 극에 달하고 있다. 의류업체에 다니는 오 대리(27)는 부모님이 중국에 산다. 명절마다 중국에 갔기 때문에 지난 설 명절에도 중국을 방문했는데 돌아와서 낭패를 겪었다. 오 대리의 회사는 중국 방문자에 대한 별도의 조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정상 출근을 했는데 직장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그는 “회사 동료들이 대놓고 접촉을 피했다”며 “이럴 거면 차라리 공식적으로 휴가를 주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 했다.
개학을 맞아 중국인 유학생들이 몰려올 것에 대비해야 하는 대학도 고민이 많다. 서울 시내 한 대학에서 근무하는 교직원 유모씨(32)는 “중국 유학생들을 2주간 기숙사에 격리하고 있는데, 기숙사에서 함께 살아야 하는 지방 출신 한국 학생들이 문제”라며 “학부모들에게서 ‘우리 아이가 중국인이랑 같이 쓰냐’는 민원 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덕분에 특수를 누리기도
반면 코로나19로 특수를 누리는 업종도 있다. 한 마스크필터 생산업체는 이달 들어 생산량을 지난달 대비 두 배 늘렸다. 그래도 쏟아지는 주문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생산관리를 맡은 조 부장(42)은 “3~4개월 전만 해도 마스크가 팔리지 않아 고민이었는데 갑자기 주문이 밀려들어 바쁘게 지내고 있다”며 “미세먼지, 코로나19 등 사회적으로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회사는 ‘특수’를 맞는 셈이어서 심정이 복잡하다”고 털어놨다.
코로나19 때문에 오히려 사내 분위기가 개선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한 금융회사는 최근 대면 보고와 정규 회의, 정기 연수 등을 모두 무기한 연기했다. 보고는 간단히 메신저나 전화로 받고, 연수는 사이버 시스템으로 대체했다. 여기에 다니는 최 과장(35)은 “상사들은 불만이 많지만 아래 직급 직원은 오히려 지금이 더 좋다고 입을 모은다”며 “진작에 온라인으로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잠잠해지더라도 지금 같은 업무 방식을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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