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임대료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관심이 무척 큰 것 같습니다. 연일 ‘임대료 때리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경제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매출이 떨어진 자영업자들에게 현실적으로 가장 큰 어려움은 점포 임대료”라며 “범정부적인 강력한 지원과 함께 상가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서도 상생의 노력이 펼쳐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영업자들에게 가장 큰 부담이 임대료이며, 건물주가 임대료를 낮춰주는 자발적 해법을 희망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경제부처들은) 모두 지금까지 잘해줬다”고 치하했지요. 적극적 재정 정책과 선제적 대응으로 경제 회복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오늘 오전 열린 국무회의에선 “건물주들의 자발적인 상가 임대료 인하 운동에 정부도 화답하여 소상공인들의 임대료 걱정을 덜어드릴 수 있는 조치들이 신속히 강구돼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일선 자영업자들의 반응은 좀 다릅니다. 임대료 부담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경기 불황으로 손님이 줄어든 게 더 큰 문제라는 겁니다. 급등한 직원 인건비 역시 큰 부담이고요.
서울의 한 프랜차이즈식당 대표는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인건비”라며 “그 다음 재료비와 임대료(관리비 포함) 등 순인데 요즘처럼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인건비와 임대료 부담이 커진다”고 했습니다. 매출만 종전 수준을 유지해 주면 고정비 부담을 낮출 텐데, 요즘은 장사가 안돼 그 부담이 급증했다는 겁니다.
자영업자 위기의 요인이 복합적이지만 경기 침체, 최저임금 인상 등 정책적 요인이 더 크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위기의 원인을 부동산 임대료로 보고 ‘건물주 대 임차인’의 대립 구도를 만들면, 이 문제를 풀기가 쉽지 않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불황 속에서 건물 임대료만 뛴 데도 이유가 있습니다. 건물 보유세를 매기는 기준인 ‘2020년 표준지 공시지가’는 올들어 전국적으로 평균 6.33% 올랐지요. 작년에도 9.42% 인상됐습니다. 전례없이 급등한 보유세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지적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습니다.
당정이 ‘착한 임대인 운동’의 사례로 전주 한옥마을을 들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밝혔지만 이는 선한 의지를 가진 일부 지역 임대인들에 국한돼 있을 뿐입니다. 자영업자들이 “정부가 제 역할은 하지 않고 건물주의 자발적인 임대료 인하만 기대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배경입니다.
여당에선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방송에서 “자영업자들이 살다 살다 이렇게 어려운 경우는 처음 봤다는데, 정부가 2월 임대료를 긴급명령으로 할인해주고 나중에 세금으로 건물주에게 보전해주자”고 했습니다. 이런 방안에 대해 경제 관료 출신과 상의도 했다고 합니다. 현실화 문제는 차치하고, 한 달 임대료를 조금 깎아주는 정도로는 해법이 되기 어렵습니다.
자영업자 위기는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작년 12월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수는 총 143만6000명이었는데, 이는 같은 달을 기준으로 따져봤을 때 금융위기 시기였던 2008년 이후 최저치입니다.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수는 2018년 12월부터 13개월 연속 줄어들기도 했지요. 최저임금 인상으로 직원 인건비가 오르니 자영업자들이 직원을 먼저 해고하고, 폐업도 많이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 대통령은 오전 국무회의에서 “서비스업이 심각한 상황으로 소비와 내수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기업과 자영업자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특단의 대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계기가 됐지만 ‘비상경제 체제’로 전환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한시적인 임대료 인하 운동이 아니라 자영업자들을 위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처방이 나오길 바랍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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