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제목 ‘아직 멀었다는 말’이 등장하는 ‘손톱’에선 외롭고 나약한 스물한 살 여자 소희의 무력함을 안타깝게만 바라보지 않는다. 작가는 굵은 고정쇠가 손톱을 뚫고 나와 살이 찢겨져도 생활비 걱정에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소희에게 함부로 희망을 말하거나 섣부르게 위로하지 않는다. “조심해야 한다. 아직 멀었다”고 하는 할머니의 말을 통해 끝을 단정하지 않고 생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기간제 교사 N의 불행을 다룬 ‘너머’도 주인공의 처량한 운명을 슬퍼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N이 겪는 일상적 고난의 원인이 무능함과 게으름 같은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부당함’ 때문이라고 말한다. ‘친구’에선 주인공 해옥과 아들 민수의 고난을 단순히 묘사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기만하고 회유하는 불의와 폭력을 드러낸다.
권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요즘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했다. ‘모르는 영역’에서 딸의 물음에 “모르지 그건, 우리가 모르는 영역이다”고 말하는 아버지 명덕처럼 작가는 “그 모름 때문에 가로지르고 치달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고 했다. 결국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많은 불행과 절망도 사실은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일지 모른다는 점을 작가는 수록 작품들을 통해 보여준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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