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양쪽으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두고 있는 광대한 나라다. 지리적으로는 유럽 및 아시아와 분리돼 있고 자체 자원이 풍부하다. 이 때문에 미국은 항상 고립주의의 유혹을 받아 왔다. 기본적으로 다자간 협약을 통해서가 아닌, 독립적인 이익 증진을 추구했다. 유럽 등 외국 간 갈등이나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이 국가 간 연합체에 얽혀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1823년 미국이 외국에 불간섭 원칙을 천명한 ‘먼로 독트린’이 대표적인 사례다.
20세기 들어서 1·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미국이 국제 전쟁에 발을 들이긴 했지만, 이 당시에도 참전은 늦었다. 미국은 독일의 U보트 공격과 일본의 진주만 공습 등 직접 공격을 당한 뒤에야 전쟁 개시를 결정했다. 이때는 이미 다른 나라들의 노선이나 전쟁의 ‘판돈’이 분명해진 뒤였다.
미국인들의 정서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큰 정부에 대한 불신’도 미국의 고립주의를 강화시킨 바탕이다. 정부 개입이 문제만 일으킨다는 얘기는 단순히 미국 대선을 앞두고 나오는 선동 구호가 아니다. 미국은 국가 설립 때부터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크게 경계했다. 영국 식민통치하에서 정부 개입의 부작용을 많이 봐서다. ‘최고의 정부는 가장 적게 통치하는 정부’라는 게 미국의 오랜 가치관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가 내놓는 정책도 이런 전통을 따르고 있다.
미국의 고립주의를 부추기는 또 다른 요소도 있다. 미국 기업들은 전통적으로 경제·외교정책에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거대한 자국 내 시장을 기반 삼아 글로벌 규모로 큰 기업들이다. 트럼프 행정부도 자국 기업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의지가 높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이 같은 고립주의적 성향에서 벗어났던 것은 전쟁으로 실존적 위협을 겪었기 때문이다. 전쟁을 경험한 미국 정치인들은 단일 강대국 경제를 바탕으로 개방적이고, 다자적인 세계 질서 구축에 나섰다.
하지만 미국이 이런 글로벌 리더십을 무기한 행사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순진했다. 경제 불안이 가중되고, 자국 내 사회·경제적 갈등이 커지면서 미국에선 집단별 권리 주장에 상응하려는 ‘정체성 정치’가 득세했다. 이에 따라 미국 정계도 일방적이고 고립주의적인 예전 태도로 되돌아가고 있다. 차기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든 자유 무역과 동맹관계 구축, 다자간 협력 제도 등에 대해 20세기 후반 대통령들만큼 노력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빠진 글로벌 다자주의가 작동할 수 있을까. 충분히 가능하다. 최근 국가별 기후변화 대응이 그런 사례다. 미국이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했지만, 다른 나라들의 목표 달성 의지가 약해지진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를 마비시키려 하자 유럽연합(EU), 중국 등 15개국이 대응하고 있는 것도 그렇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상소위원 임명을 거부하자 15개국은 WTO 표준과 절차를 유지하기 위해 일종의 ‘그림자 상고 기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WTO 사례처럼 이제 글로벌 다자질서는 EU와 중국이 주도해야 한다. 이른바 집단적 글로벌 리더십이다. 불가피한 지정학적 긴장을 감안할 때 협력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도 한때 인정했듯, 협력은 생존과 번영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 Project Syndicate
정리=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