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인생도처유상수, 겸손과 존중의 가치

입력 2020-02-19 18:22   수정 2020-02-20 00:08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 했다. 북송 시인 소동파의 인간도처유청산(人間到處有靑山)을 약간 바꾼 글귀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사람살이의 헛된 자만을 경계했다. 전통의 시간과 공간, 사람의 무늬를 찾아 평생 느린 걸음을 옮긴 선생이기에 깨달음의 알맹이는 깊고 단단하다. 우리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짧은 산책길에서도 숨은 고수는 얼마든지 발견된다. 언제나 더 겸손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

인간은 약한 생명체다.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무릎을 세우는 많은 포유류와 달리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서도 오랜 보살핌이 필요하다. 거대한 자연의 위협에 직면해 인간은 힘을 모으는 쪽으로 진화했다. 추상적인 존재를 믿는 인지혁명과 이에 따른 협력이 인간을 지구의 지배종으로 세웠다고 유발 하라리는 설명한다.

정착 농경 생활의 분업과 전문화는 문명의 씨앗을 뿌렸다. 연설에 뛰어나면 정치를 시작했고 생각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과학과 철학을 발전시켰다. 계산에 빠르거나 춤과 노래에 능한 이들에게도 나름의 역할이 부여됐다. 힘센 자들이 권력을 잡고 분화된 계층과 계급을 억압했지만 야만적인 신분제에 토대를 둔 많은 제국은 예외 없이 멸망했다.

타인의 가치에 대한 인정과 존중은 공동체의 건강을 회복시킨다. 부족한 이를 무시하지 않는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쓰임의 내용이 다를 뿐 모든 사람은 색과 모양이 다른 빛과 소금이다. 특정한 분야가 완전히 작동을 멈춘 세상을 상상해 보라. 아침 식탁의 밥 한 공기에도 무수한 사람의 손길이 담겼다. 대부분의 과정은 적어도 해당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이끈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다.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의 선생이자 학생이다.

유명인에게 환호할 나이는 한참 지났지만 볼 때마다 반가운 사람이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경제개발공사를 통해 4년 전 중견기업인들과 함께 처음 만났다. 독일 경제 부흥의 주역인 히든챔피언을 주제로 중견기업이 이끄는 경제 성장의 비전과 전략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정해진 시간을 훌쩍 넘길 만큼 뜨거웠던 논의를 마무리할 무렵 갑자기 조명이 꺼지고 작은 케이크가 들어왔다. 마침 생일인 걸 알고 슈뢰더 전 총리가 준비한 깜짝 이벤트였다. 초는 열 개뿐이었는데 100세까지 함께 건강하자는 뜻이라며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한국 경제와 중견기업의 미래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졌다며 감사하다고도 말했다. 세계적인 유명인으로서 허세나 권위의식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겸손과 존중의 가치를 아는, 진짜 고수다. 올해부터는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명예회원으로 중견기업 발전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고맙고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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