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르제이의 스타일라이프⑨] 90년대 ‘향수’를 담은 ‘유니콘’의 철학

입력 2020-02-21 12:11  


“지나온 삶의 여정이 소중한 이유는 ‘옛 추억’이 ‘오늘을 살아갈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올해 43살인 저에게도 리즈시절이 있었습니다. 풋풋했던 10대부터 예뻤던 20대까지 모두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있지만 가장 즐거웠던 시기는 90년대 중후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복고열풍’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90년대는 ‘문화의 황금기’였습니다. 해외 팝스타와 힙합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들어와 클럽문화로 정착했고 서태지를 기점으로 HOT, 젝스키스, 핑클 등의 아이돌이 가요계에 등장하며 방송‧예술은 물론 패션‧뷰티‧라이프를 총망라한 ‘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강남에서는 10대 스타발굴을 위한 길거리 캐스팅이 일상이었고 인터넷을 통해 얼굴이 알려져 연예인이 되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박한별, 구혜선, 한혜진 등 ‘얼짱’ 출신 여배우들도 그 중 하나죠.
 
1998년 IMF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경험하기 이전에는 모든 것이 여유로웠던 것 같아요. 인터넷이 보급됐지만 아날로그 감성의 낭만도 충만했어요. 손편지, 삐삐나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고 필름카메라 사진이 익숙한 시절이었으니까요.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 발매일에는 아침 일찍 동네 음반 판매점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CD나 테이프를 샀고요. 스타의 앨범 재킷 사진으로 만든 일명 ‘브로마이드’ 한 장에 행복해지는 그런 날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마음 속의 다양성이 존재하고 표현될 때 예술과 문화도 피어납니다”

특히 저는 키키나 신디더퍼키, 쎄씨 등의 패션잡지를 좋아했어요. 요즘 ‘여배우 등용문’이라고 불리는 90년대 잡지가 바로 이것들이었어요. 당시 패션 잡지는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최신 트렌드부터 스트리트 패션까지, 10~20대 눈높이에 맞춘 실용적인 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매달 빼놓지 않고 봤습니다.

용돈은 대부분 옷이나 액세서리를 사는데 썼어요. 보세상점이나 로컬 브랜드 매장이 즐비했던 명동이나 이대, 압구정 로데오 등이 주요 쇼핑스트리트였습니다. 거리로 나가면 옷보다 사람구경에 시간가는 줄 몰랐어요. 개성과 자유로움이 ‘젊음’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시절이라, 요즘 말로 ‘힙한 사람들’이 거리에 넘쳐 났거든요.

자기표현의 스펙트럼이 넓었던 만큼 정말 다양한 스타일을 길에서 만날 수 있었어요. 복고무드의 부츠컷과 나팔바지, 과감한 힙합패션과 세련된 세미정장까지 장르와 경계를 허문 멋진 패션을 매일 일상처럼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겉모습’은 계속 변합니다. 하지만 그 ‘내면’은 변하지 않죠”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화려한 탑부터 짧은 치마, 보이시한 오버핏 캐주얼까지 입어보고 싶은 스타일은 무조건 도전했던 것 같아요. 옷이 바뀔 때마다 변신하는 제 모습이 좋아서 예쁜 사진을 찍으면 싸이월드를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줬어요. 덕분에 제 방에는 늘 옷과 장신구가 가득했어요. 하나하나가 소중한 재산이고 친구 같았죠.

시대가 변했지만 옷을 대하는 제 마음은 지금도 똑같은 것 같아요.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할 때는 떨리고 입어서 편한 옷은 오랜 친구처럼 반갑습니다.

옷을 보는 취향도 마찬가지예요. 편하게 입는 것을 좋아하고 스타일보다는 분위기를 더 우선시 하는 것 같아요. 나이는 먹었지만 여전히 예쁜 옷에 눈길이 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네요.
 
유니콘 벨르제이가 선보일 옷에도 90년대를 향한 저의 향수가 조금은 담겨 있겠죠? 편안하지만 고루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마음이 가는 낭만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전히 제 안에는 다양하고 자유로운 감성을 사랑했던 ‘X세대 김혜정’이 살고 있으니까요.

패션&뷰티 크리에이터 김혜정 (벨르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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