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음식으로 익숙한 부각은 독특한 음식이다. 찌개, 찜, 구이 종류가 많은 한식에서 부각처럼 튀겨 먹는 음식은 흔치 않다. 부각을 만들려면 원재료를 햇빛에 말려 건조한 뒤 풀을 서너 번 바르는 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과거엔 특별한 날에만 내오거나 손님에게 대접하는 고급 음식으로 통했던 이유다.
이학도 씨월드 대표는 어릴 적 먹던 ‘소울푸드’ 부각을 현대화하고 싶어 부각 전문 제조업체 씨월드를 창업했다. 강원 속초 중앙시장에서 16㎡ 규모의 작은 매장으로 시작한 부각 브랜드 ‘티각태각’이 전국구 맛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오프라인 매장을 전국 20개로 늘렸다.
10가지 부각 생산
경남 거창이 고향인 이 대표는 어렸을 적 부모님이 깻잎, 감자, 고추, 개두릅 등으로 만들어 준 부각을 먹으면서 자랐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닐 때도 방학을 맞아 집에 오면 부각 반찬을 꼭 찾았을 정도로 즐겼다. 그가 부각을 사업화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몇 차례 사업에 실패한 뒤 잠시 고향에 들렀을 때였다. 동네 주민들이 부각 재료로 쓸 풀 먹인 채소를 지붕과 빨랫줄에 말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어린 시절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동시에 창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익숙하게 느끼는 전통 음식을 현대화하고 싶었다.
이 대표는 그때부터 1년 넘게 농업기술센터 등을 드나들며 기술 연구에 매진했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원재료를 숙성시키면 찹쌀풀이 잘 입혀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숙성실을 갖췄다. 미국, 일본 등 해외 기계 박람회에서 얻은 지식을 활용해 부각 전용 생산기계도 새로 제작했다.
고향에서 김, 다시마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든 부각을 접한 경험이 창업에 도움이 됐다. 여러 가지 농수산물을 활용해 부각을 튀겨낼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현재 씨월드가 생산하는 부각은 호박, 비트, 우엉, 황태, 꽃게 등 열 가지에 이른다. 앞으로 전복, 해송이버섯 등 더 많은 작물로 부각을 생산할 계획이다. 그는 “표준어로는 부각인데 고향에서는 자반이라고 불렀다”며 “다양한 작물을 활용한 부각을 생산해 농가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티각태각은 해저 200m 이하 바닷물인 해양 심층수와 200도 이상의 고열로 구운 태움·용융소금으로 간을 한다. 해양 심층수는 미네랄이 풍부한 데다 오염물질이 적고, 태움·용융소금은 나트륨 수치가 일반 소금보다 낮고 쓴맛도 덜하다. 올리고당이나 설탕으로 표면을 두르는 ‘당 코팅’은 하지 않는다. 원재료 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다.
목표는 부각의 세계화
이 대표는 씨월드를 창업하기 전 여러 차례 좌절을 경험했다. 그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학비를 지원받는 한국해양대로 진학했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마도로스가 돼 바다를 누비고 싶었지만, 사촌누나가 운영하던 도자기 공장이 부도나면서 모아둔 돈을 모두 날렸다. 한순간에 무일푼이 된 그는 아내와 함께 전국을 돌며 노점상을 해 모은 돈으로 식품 마트를 차렸다. 하지만 주변에 대형마트가 들어오면서 폐업해야 했고 연고도 없던 속초로 이사해 죽집을 운영했다.
그는 “부각을 연구하는 과정도 힘들었지만 계속되는 실패에 지친 아내를 설득하는 일이 더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죽집을 계속하자던 아내와 타협해 속초 중앙시장 한구석에서 딱 이틀만 부각을 팔아 보기로 했다. 준비한 물량 400만원어치가 첫날 다 팔렸다. 그제야 아내는 창업을 허락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티각태각은 속초에 가면 꼭 들러야 할 맛집으로 이름이 났다. 첫해 매출이 3억원에 달했다. 가게로 찾아온 손님이 부각 맛에 반해 가맹점을 하고 싶다며 점포를 내기도 했다. 창업 8년째인 지금은 전국에 20개 오프라인 매장이 있고, 매출은 지난해 기준 45억원으로 늘었다.
이 대표의 목표는 ‘부각의 세계화’다. 미국 대형 유통마트에 납품하는 등 연간 7억원가량을 수출한다. 최근에는 베트남에 20t 물량을 생산할 수 있는 제조공장도 설립했다. 그는 “해외 바이어들과 얘기해 보고 식품 박람회에 참가해 보면 외국인들도 부각에 흥미를 느낀다”며 “전통 음식 부각이 글로벌 푸드가 되는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속초=FARM 김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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