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쇄신안'만 4번째 내놓은 금감원

입력 2020-02-23 17:06   수정 2020-02-24 01:58

“금융감독원, 열린 문화로 새롭게 태어나겠습니다.”

금감원은 지난 21일 탈권위주의, 소통, 역지사지를 3대 기조로 한 ‘열린 문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금감원 직원의 전문성, 도덕성,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일하는 방식을 확 바꾸겠다는 약속이다. 세부 방안에는 좋은 얘기가 참 많다. 단기 순환인사 대신 직군별 전문성을 높이고, 청렴성에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는 직원에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다고 했다. 불필요한 감독업무는 줄이거나 협회로 넘기고, ‘쓴소리 토크’를 열어 외부의견을 가감 없이 듣기로 했다. 넥타이를 안 매고, 호칭을 수평적으로 바꾼다는 내용도 있다.

금융권의 저승사자로 통하는 금감원이 권위를 내려놓고 소통하겠다는데, 정작 금융회사들은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예전에도 그랬잖아요, 아시면서….”


‘새로 태어나겠다’는 금감원의 쇄신안은 지난 10년 동안 네 번 나왔다. 저축은행 사태가 터진 2011년, 권혁세 당시 원장은 ‘금감원 쇄신방안’을 발표했다. 카드사 정보 유출과 동양 기업어음(CP) 사태의 후폭풍이 거셌던 2015년엔 진웅섭 원장이 ‘금융감독 쇄신 및 운영 방향’을 내놨다. 채용비리 사건이 터진 2017년, 최흥식 원장은 외부인사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금감원 쇄신안’을 또 발표했다.

이때마다 전문성 제고, 외부와의 소통 강화, 재량권 남용 방지, 비리직원 중징계, 내부통제 강화 등이 단골로 등장했다. “뼈를 깎는 자세로 쇄신”(권혁세), “초심으로 돌아가겠다”(최흥식)는 다짐도 비슷했다.

금감원의 변화 의지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약속을 스스로 뒤집은 경우가 적지 않다는 건 문제다. 2015년 쇄신안의 핵심은 금융회사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 상징적 조치가 종합검사 폐지였는데, 금감원장이 바뀌자 4년 만에 부활했다. 지난해 종합검사를 받아본 금융회사 관계자들은 “과거처럼 온갖 서류를 싹싹 쓸어가더라”고 불평했다.

2011년 쇄신안에는 “죄질이 나쁜 비리직원은 기본적으로 면직 등 중징계를 내리겠다”는 대목이 있다. 2017년에는 금감원 직원의 부당 주식거래를 막기 위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수준의 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금감원 노조의 반발로 없던 일이 됐다. 2015~2018년 주식거래 규정 위반으로 적발된 금감원 직원은 92명. 이 중 71%(65명)가 징계위원회 소집 없이 경고로 끝났다. 금감원장이 언론과 월 1회 이상 만나 현안을 자세히 설명하겠다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2020년 쇄신안은 “검사·제재 절차를 당사자 입장에서 균형감 있고 예측가능한 방식으로 운영하겠다”고 했다. 법적 소멸시효(10년)가 지난 키코 사건을 분쟁조정위원회로 끄집어내 은행에 배상 결정을 내린 게 불과 두 달 전이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20일 국회에서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라임 사태, 우리은행 비밀번호 도용사건 등의 감독부실 문제로 난타를 당했다. 바로 다음날 예정에도 없던 ‘열린 문화 프로젝트’ 보도자료가 뿌려졌다. 금감원 쇄신안은 ‘2020년 버전’이 마지막이 되길 바란다. 문제점과 개선방향은 이미 잘 정리돼있다. 이행만 하면 된다.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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