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조된 원격의료' 오늘부터 시행…의사·약사·환자 모두 '우왕좌왕'

입력 2020-02-23 17:30   수정 2020-02-24 08:30


“환자들이 전화해도 응대할 직원이 없는데 어떻게 원격진료를 하라는 겁니까. 졸속도 이런 졸속이 없습니다.”

서울 동작구에서 작은 의원(가정의학과)을 운영하는 한 의사는 24일부터 한시 허용되는 원격의료 소식에 분통을 터뜨렸다. 직원이라곤 진료 보조업무를 하는 간호사 한 명이 전부인데, 별다른 가이드라인도 없이 갑자기 전화 상담·처방을 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는 얘기였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책으로 내놓은 ‘원격의료 한시 허용’이 의료 현장의 혼란만 부추길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진작에 원격의료 제도를 도입한 미국 일본 중국과 달리 아무런 인프라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시행하면 ‘병원을 통한 코로나19 확산 방지’란 도입 취지를 살리기는커녕 불필요한 갈등만 낳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가 23일 성명을 통해 “전화 상담·처방을 전면 거부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제도 시행이 무산될 조짐마저 보인다.


인프라도 갖추지 않은 상태인데…

정부는 지난 21일 환자의 의료기관 방문으로 인한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전화만으로 진단과 처방을 받는 원격의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키로 했다. 22일에는 구체적인 시행 방법을 담은 원격의료 보완책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모든 의료기관은 24일부터 전화 상담·처방을 할 수 있게 된다. 진료비는 대면 진료할 때와 똑같다. 계좌이체 등의 방식으로 송금하면 된다. 처방전은 팩스 또는 이메일 등으로 환자가 지정하는 약국에 전송하도록 했다. 약사도 전화로 복약 지도를 할 수 있다.

의약품 수령 방식은 환자와 약사가 협의해 결정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사와 환자가 합의하면 택배 배송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환자가 원하고 의사·약사가 동의하면 병원·약국을 방문하지 않고도 모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원격의료가 정부 계획대로 운영되면 코로나19 감염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코로나19 감염자들이 검진을 위해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다 일반 환자까지 전염시키고, 방문 병원이 폐쇄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감기 등 일반 환자와 만성질환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상당수 일반 환자가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병원을 찾기보다는 별다른 처방 없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도 원격의료 허용해야”

정부의 원격의료 한시 허용이 ‘졸속’ 평가를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준비 부족이다. 원격의료를 제대로 하려면 스마트폰 앱 등 원격의료 전용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 의사가 화상으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환자가 혈압 등 건강 정보를 의사에게 전달하려면 이런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에선 이런 원격의료가 일상이 돼 있다. 스마트폰 앱으로 의사 진단, 처방부터 의약품 배송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국의 ‘알리헬스’는 누적 사용자가 1억 명이 넘는다.

하지만 한국은 원격의료가 불법인 탓에 이런 시스템이 없다. 서울 마포구에서 이비인후과를 운영하는 한 의사는 “비대면으로 처방하려면 최소한 환자의 상태를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며 “화상통화를 해본 적이 없는 장년층 의사들은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어 “계좌이체 등으로 진료비를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환자가 돈을 안 내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중소 규모 병원을 중심으로 ‘집단 보이콧’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다. 대한의사협회는 23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회원들에게 “전화 상담과 처방이 이뤄지지 않게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다만 대다수 대학병원은 원격의료 한시 시행에 찬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약사들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이광민 대한약사회 정책기획실장은 “의약품 택배 배송 과정에서 배달 사고가 나거나 배달 중 변질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문의가 많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원격의료를 비상 사태에 ‘땜질 대책’으로 쓸 게 아니라 미국처럼 전격 허용해 환자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만성질환자의 재진 이상 진료는 원격의료를 도입해도 큰 문제가 없다”며 “고령화로 만성질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평상시에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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