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로주택정비사업 등 ‘미니 재개발·재건축’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제도에 허점이 많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관련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간소화를 위해 생략한 부분이 많아서다. 보완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 사업을 추진하는 주민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동의율 미달인데 조합설립총회 먼저?
27일 국토교통부는 소규모 정비사업 활성화 방안 등을 담은 ‘2020년 업무추진계획’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서울 도심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 과감한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필요에 따라 공공이 주도하는 내용이다. 앞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3월 중 공급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언급한 점을 감안하면 발표가 머지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소규모 정비사업이란 가로주택정비사업과 자율주택정비사업, 소규모재건축 등을 말한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을 적용받는 일반 재개발·재건축과 달리 ‘빈집 및 소규모 주택정비에 관한 특례법’을 따른다. 과거엔 도정법에 함께 포함됐지만 활성화를 위해 2018년 별도 법으로 분리됐다.
정부가 당근까지 꺼내면서 사업을 장려하고 있지만 빈집법엔 허점이 많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도정법을 준용해 축약하는 과정에서 생략된 조문이 많아서다. 대표적인 게 조합 창립총회 요건이다. 일반 정비사업은 도정법에 따라 조합설립 동의율(75%)을 충족한 뒤 총회를 열어야 한다. 하지만 빈집법엔 이 같은 규정이 없다. 소규모 정비사업의 경우 동의율(가로주택 67%·소규모 재건축 75%)을 채우지 못했더라도 일단 총회는 열 수 있는 셈이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동의율이 부족하더라도 조합설립이 되는 것처럼 선전하면서 동의서를 더 받아낼 수 있다”며 “리모델링사업도 같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합원들의 분담금 등 재산을 정산하는 단계인 관리처분계획의 경우 ‘경미한 변경’ 절차가 빠졌다. 경미한 변경이란 계산 착오나 오기 등으로 인한 단순 정정이 필요할 때 인·허가를 신속히 다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일반분양분에 대한 세부 기준은 아예 마련되지도 않았다. 빈집법은 주택공급 방법이나 절차 등에 대해선 별도 시행령의 범위대로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 제정 2년이 넘도록 관련 시행령 규정이 만들어지지 않아 ‘주택법’을 따른다.
◆“구멍 숭숭…보완입법 시급”
정부가 소규모 정비사업을 일반 정비사업과 별도 법으로 분리한 건 사업 절차 단축을 위해서다. 정비구역 지정과 안전진단, 추진위원회 설립 등의 단계가 생략됐다. 관리처분계획인가도 사업시행계획인가에 포함시켜 인·허가 단계를 줄였다. 행정절차를 줄여 공급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기존 도정법의 복잡한 조문을 줄이는 과정에서 오히려 해석이 모호한 부분이 늘어나 법리적의 다툼의 소지도 생겨났다.
전문가들은 조합원 지위와 관련한 규정도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반 재개발·재건축의 경우 조합설립 이후 구역 내 다주택자의 물건을 여러 명이 나눠 샀다면 대표자 한 사람에게만 분양자격을 준다. 신탁사를 사업시행자로 지정했다면 지정일 이후 거래분에 대해 마찬가지 규정을 적용한다. 그러나 소규모 정비사업엔 신탁업자와 관련한 규정이 없다. 만약 주민들이 신탁업자에게 맡겨 사업을 진행한다면 다주택자의 물건을 양수한 이들도 각자 조합원 지위를 취득할 수 있는 셈이다.
투기과열지구에서 조합원 지위 양도를 막는 규정도 모호하다. 투기과열지구의 일반 재건축사업은 조합설립 이후, 재개발의 경우 관리처분계획인가(2018년 1월24일 이후 최초 사업시행계획인가 신청 사업장에 한함) 이후 조합원 지위를 양도 할 수 없다. 1주택자가 장기보유한 주택이나 질병 때문에 1년 이상 치료나 요양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등 예외적 사유만 가능하다. 그런데 빈집법의 소규모 재건축사업은 1주택자의 보유기간 요건이나 질병 사유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김은유 법무법인 강산 대표변호사는 “법이 시행된 지 오래되지 않아 쟁점이 여럿 존재한다”며 “조속히 보완입법이 이뤄져야 할 사항이 많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해 ‘12·16 대책’을 통해 가로주택정비사업의 층수와 면적 규제를 완화하면서 공급 촉진책을 내놨다. 하지만 공기업의 사업시행자 참여와 확정지분제, 의무임대비율 등을 조건부로 내걸어 주민들 입장에선 사업성이 높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소규모 정비사업 규제를 찔끔 완화한다고 해서 공급이 크게 늘어나긴 힘들 것”이라며 “제도 정비가 함께 이뤄지지 않으면 중소 건설사나 컨설팅업자의 투기판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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