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휘의 베트남은 지금] 베트남에 번지는 한국인 기피 현상

입력 2020-02-24 16:55   수정 2020-02-24 23:57


한국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계속 증가하면서 베트남도 한국발 항공편에 대한 검역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체온 측정 후 37.5도 이하인 경우에만 검역서류 작성 후 입국이 허용된다. 기준치를 넘어서면 2주간 격리 조치에 취해진다.

24일 베트남 다낭 보건 당국은 대구 공항에서 출발해 다낭에 도착한 비엣젯 항공에 탑승한 한국인 20여 명을 다낭 인근 병원에 격리 조치했다. 여행사 관계자는 “대구에서 다낭에 들어 온 마지막 비행기였다”며 “부산 등 다른 지역에서 온 한국인은 모두 정상적으로 입국했다”고 말했다.

뚜오이쩨 등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전일 한국에서 베트남 다낭 국제공항으로 입국한 승객(25세)이 발열·기침 등의 증상을 보여 즉시 다낭시 폐병원에 격리했다. 호찌민에 거주하는 베트남 사람인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정부는 전일 저녁 무렵부터 한국발 항공편에 대한 검역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하노이시는 대구, 경북 지역에서 오는 한국인은 무조건 격리조치하고, 그 외의 지역일 경우 감염 의심자만 2주간 격리하는 안을 보건 당국에 요청한 상태다. 호찌민시는 한 발 더 나아가 모든 한국인과 한국을 경유한 외국인을 격리 조치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입국 금지인 셈이다.

다만 24일까지 대구, 경북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베트남에 도착한 한국인들은 문제 없이 입국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코참(주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 소속의 한 기업인은 “23일 저녁에 인천~하노이 비행기로 베트남에 입국했다”며 “비행기에서 내릴 때 검역 서류를 받아서 검역 데스크 앞에서 작성 후 확인 도장을 받아야 입국 심사를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베트남은 한국과 달리 초기 방역에 성공한 덕분에 13일 이후 확진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다. 24일 기준으로 베트남 내 확진자는 16명(다낭 이송 환자 제외)이고, 이 중 15명이 완치됐다. 유증상 감염 의심자도 12명(22일 기준)에 불과하다. 격리 조치된 무증상 감염 의심자는 1538명이다. WHO(세계보건기구)는 베트남의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국제사회의 모범”이라고 평가했다. 베트남이 사태 확산을 막을 수 있던 건 대(對)중국 방어망을 일찌감치 실시한 덕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베트남 정부는 이달 1일 중국과 베트남을 오가는 모든 비행기의 운항을 중단시켰다. 철도 운송도 중단됐다. 중국과의 국경 무역도 중단됐다가 6일부터 철저한 검역 하에 일부 재개됐다. 내부 통제도 신속하게 진행됐다. 하노이에서 차로 1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빈푹성의 손로이라는 인구 1만명 가량의 마을에서 확진자 6명이 나오자 발빠르게 외부와의 연결을 차단했다.

베트남은 전염병 방역에 관해 나름의 노하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스(SARS)를 처음 세상에 알린 주역도 베트남이다. 2003년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의 프랑스병원에서 일하던 WHO 소속의 감염병 전문의 카를로 우르바니 박사가 비정형성 폐렴 사례를 발견하고 즉각 보고함으로써 사태 확산을 막았다. 박기동 WHO 베트남사무소장은 “에볼라, 사스, 신종 플루 등 전세계적인 전염병이 발생하면서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에 전염병 방지를 위한 의료 장비와 시설 지원이 상당히 많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대가족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는 베트남 사회의 특성도 방역에 큰 몫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내가 감염되면 가족 전체가 감염된다’는 의식이 강해 자발적인 방역이 실시됐다는 얘기다. 한국 내 코로나19 확산이 더 지속될 경우 한·베 간 이동은 점점 더 어려워 질 전망이다. 하노이에 있는 스카이레이크라는 골프장은 현지 공안으로부터 한국인 관광객을 받지 말라는 공문을 받았다. 이 골프장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한국인들에 대한 기피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하노이시의 국제학교는 한국인과 베트남 상류층 자제들이 주로 다닌다. 베트남 학부모들 사이에선 한국 가정의 학생들이 설날에 한국을 다녀왔기 때문에 휴교를 더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아파트 단지에선 한국인에게 거주 신고를 하라고 요청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하노이에 거주하는 한인 A씨는 “보건 당국이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도 “얼마 전까지만해도 중국인들이 살고 있는 동호수가 단톡방에 공개됐는데 이젠 우리가 그런 신세가 됐다”고 아쉬워했다. 다낭과 달랏공항은 한국인만 별도로 검역 절차를 밟게 한 후, 버스로 입국장에 이동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정부가 전면 차단에 나설 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양국을 오가는 정기편만 주간 538회(왕복을 1회로 계산)에 달한다. 지난해 베트남을 방문한 한국인은 429만명이다. 한국인 관광객 방문이 중단될 경우 베트남 경제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코로나19로 인해 베트남 농가가 피해를 입자 코참, 한인회를 비롯해 삼성, 신한은행 등 한국 기업들이 나서 수박 구매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삼성은 약 12만 달러어치를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덕분에 수박 가격이 일시적으로 반등하기도 했다.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한국인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 행위가 있다면 대사관이 나서 항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하노이 특파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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