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원상사그룹 미원화학의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 단 한 명의 개인 소액주주도 참석하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우려로 소액주주들이 주총장 방문을 꺼린 탓이다.
미원화학은 코로나19가 확산된 후 처음으로 주총을 연 '올해 주총 1호' 상장사다. 오는 3월 본격적인 정기 주총 시즌을 앞두고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으로 소액주주의 주총 참석율이 떨어져 의결 정족수가 미달될 수 있다는 상장사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계면활성제 제조업체 미원화학은 25일 울산 남구 장생포로 본사에서 정기 주총을 열었다. 미원화학 5층 대회의실에 참석한 소액주주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새로 선임된 사외이사와 10여명의 미원화학 관계자들만 참석한 가운데 정기 주총이 진행됐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가파르게 늘면서 소액주주들이 주총 등 단체 행사 참석을 외면한 영향이다.
미원화학 관계자는 "전자투표를 도입하지 않아 과거에는 일부 소액주주들이 주총장을 찾았는데 올해는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액주주의 전원 불참에도 불구하고 미원화학이 상정한 감사·이사 보수 한도 승인 및 정관 변경 등의 안건은 모두 통과됐다. 미원화학의 최대주주 측 지분율이 높은 덕분이다. 미원화학의 최대주주는 김정돈 미원상사그룹 회장이다. 김 회장을 비롯해 김 회장의 친인척과 미원화학·계열사 임원 지분율이 총 54.23%에 달해 의결 정족수를 확보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김 회장 측 외에는 우리사주조합(7.36%)과 피델리티 매니지먼트 앤 리서치 컴퍼니(5.00%)가 주요 주주다. 소액주주는 전체의 33.41%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미원화학 임직원은 이번에 상정한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안을 위해 주총 일정 확정 후 한 달 가량 전국 소액주주를 직접 찾아다니며 위임장을 받았다. 감사 및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안에는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 룰’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나머지 의결 정족수를 소액주주들로 채워야 한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대주주 측 지분율이 높지 않은 상장사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가뜩이나 소액주주의 주총 참여율이 저조한데 코로나19까지 겹쳐 의결 정족수 미달로 안건이 줄줄이 부결되는 사례가 우려돼서다.
상법에서 규정한 주총 보통결의 기준은 ‘출석 주주 50% 이상 찬성+전체 주주 25% 이상 찬성’이다. 재무제표 승인 등 간단한 안건을 통과시키려고 해도 전체 주주의 4분의 1이 넘는 찬성표를 받아야 한다. 최대주주 측 지분율이 높지 않은 상장사는 25% 이상 찬성표를 받는 게 쉽지 않다.
일부 상장사들은 적게는 몇백만원에서 많게는 2억~3억원을 주고 의결권 위임 권유 대행업체와 계약해 소액주주로부터 위임장을 받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대면 접촉을 꺼리면서 위임장을 회수하는 비율이 저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올해 정기 주총에서 300여 개 상장사가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상정된 안건을 통과시키지 못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전자투표 도입이 늘고 있지만 행사율은 여전히 저조하다. 고령자의 경우 전자투표보다 서면투표를 선호하는 데다 코스닥 상장사는 단기 투자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주총 안건 등에는 무관심한 경향도 짙어서다. 지난해 정기 주총 때 기업별 발행주식 수 대비 전자투표 행사율은 평균 4~5% 수준이었다. 올해도 큰 변동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증권사 관계자는 “코스닥 상장사는 통상 전체의 60~70%가 소액주주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자투표 행사율이 15% 이상 나와야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내 증시 ‘대장주’인 삼성전자는 다음달 18일 주주총회를 열고 재무제표 승인 및 사내이사 선임 안건 등을 처리한다. 현대자동차는 다음달 19일, LG생활건강은 20일 주총을 진행한다. 다음달 24일에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39곳, 코스닥시장 상장사 266곳 등 305곳의 상장사가 한꺼번에 주총을 개최하기로 해 올해도 어김없이 ‘슈퍼 주총 데이’가 예고된 상태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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