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고객 경험과 감동을 완성하는 과정입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 17일 새해 첫 현장 방문 일정으로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를 찾았다. 모든 제품의 출발점은 ‘고객’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에는 ‘비밀병기’와 같은 조직이 있다. 고객들의 삶을 관찰하고 그곳에서 통찰을 얻어 제품 기획 및 개발에 반영하는 라이프소프트리서치(LSR)실이다.
‘고객 대변인’이 떴다
권혁진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LSR실장은 26일 “LSR실은 고객을 대변하는 조직”이라고 소개했다. 연구원들이 짐을 싸서 석 달간 공유주택에 들어가 프로골퍼, 개인 사업가들과 살아보기도 하고, 외국의 가정에 찾아가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모습부터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8시간 이상 ‘집중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팀 하나가 나가 공유오피스 위워크에 사무실을 꾸리기도 하고, 연구원 중 일부는 생활 속 불편함을 찾아내고자 전기차를 몰고 다닌다. 모두 고객의 삶 속에서 통찰을 얻기 위해서다.
연구의 두 가지 축은 ‘세대’와 ‘공간’이다. 최근 확인한 가장 큰 트렌드는 집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권 실장은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집의 공간은 이전보다 좁아졌지만, ‘근린 공간’도 개인적인 영역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생겼다”고 말했다. ‘스세권(스타벅스와 역세권의 합성어)’ ‘편세권(편의점과 역세권의 합성어)’까지 집의 영역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권 실장은 “가정용 가전뿐만 아니라 공유주택, 공유주방, 편의점, 빨래방 등으로 영역을 넓혀 B2B(기업 간 거래) 고객 발굴을 확대해야 하고, 그에 걸맞은 사물인터넷(IoT) 관리 솔루션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트렌드는 고객이 더 이상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로 변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권 실장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는 자신의 소속감을 회사에 두는 대신 개인이 주도하는 경제를 만들어내는 세대”라며 “단순히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구매하는 데서 나아가 자신이 구매한 제품으로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숨은 니즈까지 발굴하라”
‘집’의 영역을 ‘휴식 공간’에서 더 나아가 ‘생산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싶어 하는 것도 새로운 특징이다. 개인의 공간에서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싶어 하는 욕구 때문이다. 김지운 LSR실 고객인사이트팀장은 “고객들은 집에서 식물을 재배할 때도 성장하고 싶어 하고, 독서 모임을 하거나 와인 모임을 여는 등 집을 생산적인 공간으로 변신시키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전을 통해 고객이 성장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LSR실은 냉장고라는 제품 그 자체를 분석하는 게 아니라 ‘고객 경험’이라는 관점에서 제품을 바라본다. 공기 청정만큼 중요한 공기 순환을 위해 공기청정기에 팬 형태의 ‘클린부스터’를 접목하는 아이디어가 이곳에서 나왔다. 집에서 홈바를 꾸미고 위스키나 칵테일을 만들어 먹는 고객들을 위해 동그란 구(球)형 얼음을 제조하는 ‘크래프트 아이스 냉장고’를 제작해보자는 제안도 마찬가지다.
구 회장이 디자인경영센터를 방문해 내린 ‘특명’도 “고객이 원하는 모든 것을 발굴하라”였다. 권 실장은 “고객이 원하는 게 10일 때 기업이 5의 가치밖에 주지 못할 때 나머지를 ‘페인 포인트(pain point·고민 지점)’라고 표현한다”며 “우리는 페인 포인트를 채우는 데서 나아가 고객이 아직 느끼지 못하는, 15·16의 숨은 니즈까지 발굴하는 조직이 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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